‘현장중심 노동→비대면 노동’…코로나가 바꾼 노동형태
한국의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로 ‘풍전등화’다. 그나마 최근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일자리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코로나19 여파를 줄이기 위해 원활하게 경제활동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지속 중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비대면 근무’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산업 영역에서 의외로 원격·재택근무가 수월하게 이뤄지면서 노동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마저 깼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가 일종의 ‘실증사례’ 역할을 한 셈이다. 원격·재택근무가 한국의 기본적인 노동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예측마저 나온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유연근무제 도입 등 제도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한다. 또 제도적 보호장치에서 벗어나 있었던 플랫폼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재난에서 보호할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29일 국내 산업·노동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전통적인 노동 형태의 변화가 도래할 전망이다. 현장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고 인식됐던 업종에서도 비대면 노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증명되면서 기업들이 대대적인 구조 변화를 단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재택근무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일본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2016년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전체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사무직·연구개발(R&D) 담당 기술직 등 2만5000명은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도요타는 “근무지와 근무시간을 회사가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팀·부서별로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후지쓰, 미쓰비시도쿄UFJ 등도 전 사원이 출근하지 않고 자택이나 출장지, 원하는 어느 장소에서든 근무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한국에서도 ‘금기의 영역’이 깨지고 있다. 예를 들어 콜센터 직원들의 재택근무는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더라도 인프라만 갖추면 어디서든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동안 콜센터는 고객과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한 곳에 모여 업무를 봐야하는 ‘준대면 업종’이며,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어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 솔루션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콜센터 근무자들의 직업윤리 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지면 재택근무도 가능하다는 점이 코로나19 사태로 확인됐다.
노동 형태 변화에 맞춰 제도적 변화도 필요
산업·노동계에서는 노동구조 변화 물결에 맞춰 유연근무제 법제화 등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근로시간에 유연성을 제공하는 유연근무제(선택적 근로시간제·재량 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에 규정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와 같이 근무 장소를 유연하게 하는 방식의 유연근무제는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노동관계법에서 직접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법적으로 근무 장소에 상관없이 근로자가 보호받고, 고용주도 재택근무에 따른 근로자 평가, 고용지속 여부 등을 객관적으로 결정할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체계 다양화도 필요하다. 현재는 근무시간 기준 임금 책정이 기본이다. 반면 재택근무는 근무시간을 정확하게 산출하기 어려워 시간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체계만으로는 부족하다. 성과나 직무,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에 맞는 임금을 책정할 적절한 기준이 속히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재택근무를 한다고 급여에 불이익을 주는 식의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보호장치도 동시에 만들어져야 한다. 근무 행태에 따른 평가 및 보상 기준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취약계층 보호막도 강화해야
일부에서는 코로나19 사태 도중 사각지대에 머물렀던 대리운전, 퀵서비스, 택배기사, 배달기사 등 ‘대면 근로자’에 대한 보호장치도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대부분 특수고용근로자, 플랫폼 노동자로 구분돼 법적 보호 테두리 바깥에 있다. 이 때문에 업무상 재해에 따른 산재보험 적용에 제약이 많다. 일반 근로자들이 근무 중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산재로 보상을 받거나, 치료 기간은 유급 휴가로 처리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세계 각국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사람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3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노동부 장관들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적절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일자리와 소득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고용형태나 연령·성별에 관계없이 필요로 하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