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아시아나 인수 무기한 연기…“산은의 ‘인수 독촉’ 우회적 거부”

입력 2020-04-29 16:51 수정 2020-04-29 16:57

HDC현대산업개발이 이달 말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인수 날짜를 무기한 연기했다. 산업은행이 최근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지원하며 ‘인수 작업을 서두르라’고 한 데 대해 HDC현산이 부정적인 신호를 준 거라고 업계에선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막대한 부채비율에도 적극적인 자구책을 내놓지 않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무언의 압박을 준 거라는 해석도 나온다.

HDC현산은 30일이었던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예정일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29일 공시했다. 지난해 말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D현산은 당초 30일 주식 취득을 완료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HDC현산은 “러시아에서 기업결합을 아직 승인하지 않아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인수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되며,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합의되는 날로 인수날짜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HDC현산 내부에서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고 본다. 산은은 지난 21일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후 “HDC현산과의 입수합병 절차가 정상적으로 종결되길 기대한다”고 했었다. 이에 대해 HDC현산이 부정적인 신호를 준 거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1조7000억원도 대출 형태로 지원되는 거여서 HDC현산 입장에선 인수 후 갚아야하는 빚일 뿐”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이나 코로나19 사태가 나아진 게 없는데 무작정 인수 속도를 올리긴 어렵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의 경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유상증자, 보유 토지 매각 등 1조5000원 규모의 자구안을 검토 중인 것과 달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손을 놓고 있다는 점도 HDC현산의 고민을 깊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6월 말 기준 재무상황을 보고 인수를 결정한 건데, 지난해 4분기 부채가 무려 3조원 가까이 증가했지만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며 “이번 1분기도 감염병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데 직원 무급휴직 외의 그룹 차원의 자구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엔 아시아나항공이 금호산업에 120억원 규모의 금호아시아나 상표사용계약금을 지급해 그룹 차원의 자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금융권에선 향후 HDC현산과 채권단의 아시아나항공 지원 협의 결과가 매각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악의 경우 HDC현산이 2500억원의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