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성이 이 정도라면 저자의 명성은 어떨까. 인천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이자 중환자실 실장인 이낙원(45)은 그리 유명한 저술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과거 발표한 책들은 뭉근한 감동을 선사하며 독서가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었다. 가령 3년 전 발표한 에세이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에 등장하는 이야기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저자는 천식으로 고생하면서도 흡입기를 활용한 치료를 거부한 고집불통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는 죽음을 앞두고도 “(죽어서) 조용히 흙 보태러 가야지”하면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저자는 할머니의 병상 생활을 전한 뒤 이렇게 적었다. “사람이 쓸 수 있는 호흡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숨의 대부분을 웃는 데 쓰셨다. …에리히 프롬은 수동적인 삶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겪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죽음에도 사는 죽음이 있고, 겪고 마는 죽음이 있는데 할머니는 죽음을 살아내셨다.”
이렇듯 근사한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 의사가 바로 이낙원이다. ‘바이러스와 인간’은 제목만 보면 딱딱한 교양서로 넘겨짚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반부를 장식하는 내용은 1월 29일부터 3월 27일까지 저자가 써 내려간 일기 40편이다. 대구나 경북에 비한다면 인천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친 지역이 아니었으니 저자의 글에서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한 의료 현장의 분투 흔적을 발견하긴 힘들다. 저자가 첫머리에 밝혔듯이 “코로나의 일상적인 의료 현장”이 담담하게 펼쳐질 뿐이다.
한데 그의 일기를 읽고 있노라면 한국인 누구나 겪은 ‘코로나 터널’에서의 삶을 복기해보게 된다. 예컨대 소강상태를 보이던 코로나 확산세가 갑자기 되살아났던 2월 19일 일기를 보자. 그날은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였다. 닷새째 감염자가 나오지 않다가 10명 넘는 확진자가 쏟아져 나온 날, 저자는 날씨가 따뜻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일기를 썼다. 바이러스가 더위를 싫어해서다. 그는 “마음이 우수(憂愁)한 사람들을 위하여 따뜻한 봄바람이여 어서 오시라”라고 적었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근심과 불안 사이를 서성였던 저자의 마음은 행간 곳곳에 묻어난다. 2월 23일 일기에서 그는 확진자 증가 추이가 담긴 그래프를 언급하면서 “하늘로 치솟는 곡선은 바이러스 무서운 줄 모른다고 인간에게 손가락질하는 누군가의 손끝 같다”고 썼다. 코로나19가 만든 쓸쓸한 임종의 풍경을 그려낸 대목도 인상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중환자실에선 임종을 앞둔 환자의 가족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지구에 사는 인구 한 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낯설고 시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짐이 주어지는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는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과정마저 비정하게 바꿔놓았다.”
책에는 코로나19가 만든 살풍경을 세세하게 그려낸 글들이 간단없이 등장한다. 저자는 확진자를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선 병세를 숨기는 이들이 생긴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아프니까 나를 좀 봐달라’는 요청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더 빨리 바이러스 확산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상” “재앙” 같은 수식어를 내세운 자극적인 언론 보도를 꼬집는 대목도 눈여겨봄 직하다. 저자는 “이런 격앙된 단어를 특별히 더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며 “만일 이런 보도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면 나처럼 바이러스 환자를 보는 사람은 어떻게 사나, 이런 항변이 올라오는 것이다”고 말한다.
전반부에 코로나 시대에 의사들이 겪는 삶이 담겼다면, 후반부에는 맛깔 나는 문장으로 버무린 과학 에세이들이 실려 있다. 인체의 해부학적 특징을 일별하고, 바이러스의 특징을 파헤치고, 감염병의 발생 이유를 들려준다. 인상적인 내용이 수두룩한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장기와 세포부터 들여다보게 됐다. 그러나 감염병은 이런 추세에 제동을 걸었다. 감염병은 “외과적 수술로 병변을 깨끗이 도려낼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감염병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 저자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질병관리본부를 언급하면서 이런 글을 적어두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중앙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유행병의 확산을 관리하는 것은 의료 조직과 사회 각 분야의 역량을 조율하고 동원할 수 있는 정부가 해야 한다. …질병은 치료와 동시에 ‘관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감염병에 대처하는 정부 기관을 ‘질병관리본부’라고 부른다.”
책을 다 읽은 뒤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이 느낀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 독자들로부터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인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인천은 확진자가 많이 나온 곳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가 일으킨 긴장과 불안이 진료 과정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바이러스보다 빨리 전염되는 것이 불안과 두려움이더군요. 다행히 한국사회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잘 대처한 것 같아요.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전염력을 조기에 누그러뜨려서 불안이 증폭되는 과정에 도달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