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2010년 제주의료원에 소속된 다수의 간호사들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은 ‘제주의료원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근무 환경에 유해 요소나 과중한 업무 탓에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면 산업재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 간호사였던 A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09년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로 일하던 중 임신한 A씨 등은 2010년 출산했는데, 태어난 아이가 모두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기간 병원에서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은 유산을 겪었다. 제주의료원은 노사합의로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산학협력단은 유산 등이 업무상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A씨 등은 서울대 역학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에게 선천성 심장질환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만을 의미해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반려하자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라며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산재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업무상 사유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본인이어야 한다”며 “태아의 건강손상에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모(母)가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