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아내 잃고 의료소송…탄원서 1700여장 모여

입력 2020-04-28 21:35 수정 2020-04-29 01:09
고양시청 이성빈 주무관의 안타까운 사연 알려져
1심 패소 후 항소심 재판부 감정신청 기각, 변론종결
3일 만에 공직자 1400명, 시민 300명 탄원서 전달
재판부 변론재개 신청과 감정신청 모두 받아줘

이성빈 주무관의 안타까운 사연에 모인 1700여장의 탄원서. 이성빈 주무관 제공

“기적과 같이 단 3일 만에 1700여장의 탄원서가 모였습니다.”

출산을 겪으며 아내를 잃은 한 남성의 안타까운 사연에 1700여명의 직장 동료, 일반 시민 등이 힘을 보탰다.

힘겹기로 알려진 의료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 남성은 경기도 고양시청에 근무하는 이성빈 주무관(45)이다. 이 주무관은 지난 20일 고양시청 내부 게시판에 ‘직원 여러분의 탄원서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주무관은 “아내가 2017년 4월 일산 소재 산부인과에서 첫 아이를 출산 후 산후출혈로 2주간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면서 “영문도 모른 채 수술대 위에서 수혈조차 받지 못하고, 전원 조치된 상급병원에서도 무려 3시간 30분이나 지나 지혈조치가 이뤄져 결국 과다출혈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주무관은 이후 병원과의 의료소송을 시작했고, 지난해 말 1심에서 패소했다. 이에 항소했지만 최근 시작된 2심에서 재판부는 1차 변론에서 신청한 감정신청을 모두 기각, 변론을 종결하고 바로 판결 선고일을 잡았다.

이 주무관은 “1차 변론에서 종결을 시킨다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저희 유가족은 2심에서 아직 밝히지 못한 중요사인이 있다”며 “저희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변론 재개 여부는 판사의 재량으로 여러분들의 탄원서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23일에는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앞에서 변론 재개를 요청하는 1인 시위도 했다.

이같이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이재준 고양시장을 비롯한 고양시 공직자, 사회단체, 시민들은 이 주무관에게 자필로 작성한 탄원서를 새올 전자메일, 문자메시지, SNS, 사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했다. 이렇게 모인 탄원서는 3일 만에 무려 1700여장이나 됐다.
이성빈 주무관의 안타까운 사연에 모인 1700여장의 탄원서 중 한 탄원서 내용. 이성빈 주무관 제공

이에 이 주무관은 지난 24일 고양시청 내부 게시판에 감사의 말을 남겼다. 이 주무관은 “법원에서 변론재개 신청을 받아줬다. 그것도 모든 감정신청을 다 받아 줬다”며 “여러분들의 탄원서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변론 재개시 법원이 모든 감정신청을 다 받아주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제는 결과에 상관없이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어 이 주무관은 “이번 탄원서 도움 운동은 제 인생에 커다란 분기점이 됐다. 외로움, 좌절, 걱정의 마음에서 희망의 마음으로 바뀌었다”며 “무엇보다 나중에 딸이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가득한 탄원서를 보여주며 ‘이것 봐 우리 딸, 이렇게 많은 분들이 너를 사랑하고 염려한단다’라고 말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일평생을 저도 남을 도우면서 살고 우리 딸도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인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고양=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