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사회’ 일본… 코로나로 ‘온라인 결재’ 전환하나

입력 2020-04-28 17:17 수정 2020-04-28 17:58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일본의 뿌리 깊은 ‘도장 문화’를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2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전날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서류 결재 절차와 관련해 전자화에 필요한 검토를 서둘러야 한다”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 정부 지원금이나 각종 수당 신청, 운전면허 갱신 등의 절차에서 날인을 생략하는 방안이 검토 대상이다.

일본 정부가 대면 날인을 원칙으로 하는 행정 절차에서 탈피해 전자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실업급여, 휴업수당 등 각종 정부 보조금을 신청하기 위해 관공서에 몰린 시민들 사이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팬데믹 위기를 맞은 가운데 지원 업무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자결재를 일본 내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만들기 위해 민간 절차의 온라인화도 서두르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정부가 전자결재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이 이에 따를 의무가 없다. 일본 정부는 이날 지식인들로 구성된 규제개혁추진회의에서 민간 절차 온라인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상사의 날인을 받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를 도입하려고 해도 도장 문화 때문에 못 한다는 지적도 많다. 아베 총리가 일본 전역에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사람 간 접촉을 80% 이상 줄여달라”고 주문했을 때도 기업의 도장 문화는 개선되지 않았다. 일본 정보경제사회추진협회에 따르면 인감이나 자필서명 대신 온라인 전자계약을 일부라도 도입한 기업은 지난 1월 기준 43.3%에 불과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에 날인을 요구하는 관행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공립 보육기관 입소시에도 보호자의 직장 인감을 요구하는 지자체가 많다. 고노 타로 방위상은 27일 트위터를 통해 “내부 결재를 모두 전자결재로 했다. 외부 서류를 취급할 때에도 도장과 인감 증명은 전혀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도장 문화를 없애는데 최대 걸림돌은 관공서와 결탁한 도장업계의 ‘밥그릇 지키기’와 반발이다. 일본 관공서는 이제까지 도장업계와 손잡고 부처마다 신청서 서식, 문서 취급 규칙 등을 다르게 유지하며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과학기술과 IT산업을 총괄하는 타케모토 나오카즈 과학기술상은 일본인장제도·문화수호의원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나오카즈 과학기술상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결재 절차는 민간 영역의 문제이므로 정부 차원에서는 개입 계획이 없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