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맹인인가?

입력 2020-04-28 15:24

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

요한복음 묵상 노트 (14)
요 9:1~41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걸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 이었습니다.

살아야겠는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앉아서 길가는 사람에게 구걸하면서 먹고살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금수저로 태어나 잘 사는데 저런 인생은 뭘까?

조상 대대로 집안의 저주인가? 부모의 죄인가? 자기의 죄인가?

무언가 이유가 있을텐데 그게 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다릅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3)”

우리가 당하는 저주받은 것 같은 사건들에 대한 바른 해석입니다.

맹인 걸인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는 눈을 떴습니다. 할렐루야!

누가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안되는 일입니다.

살면서 사람의 힘으로 풀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저주 라고 생각했고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비참한 사건들을 하나님의 손에서는 풀어집니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게다가 육신으로 사람 사이에 들어오신 하나님이 사람들과 소통하시니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축복을 단순하게 믿으면 되는데 믿지 못하니 맹인이 눈을 뜬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더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을 거부하려니 그 사건을 두고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 맹인이 정말 눈을 뜬 게 맞느냐, 나면서 부터 맹인 인게 맞느냐 등 부모까지 출동 시켜서 심문을 합니다.

급기야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예수라는 사람이 안식일에 그 일을 했으니 죄인이다’라고 결론을 내고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예수? 이 사람은 어디서 온 사람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런 말도 안되는 발상이 나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종교 지도자들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계속 자극을 받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제 얼마 후에 예수님을 죽이는 세력들이 되어 십자가 앞에 나타납니다.

한편 예수님은 눈을 뜨게 하신 맹인 걸인이 출교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러 다시 찾아오십니다.

맹인 걸인은 다시 찾아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경배합니다. (요 9:38)

예수님이 오신 곳에 진짜와 가짜가 가려집니다. 누가 진짜 맹인이며 누가 진짜 보는가?

진리를 인정하고 믿는 자들은 볼 수 있지만 진리를 거부하는 자는 못보고 맹인이 되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심판과 구원으로 그 길이 명확하게 갈라집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진리를 믿는가, 진리를 거부하는가, 여기서부터 운명이 바뀌어 집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됩니다.(요 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