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취를 감춘 이후 한·미, 미·일 연합훈련을 겨냥한 북한 당국의 날선 비난도 뚝 끊겼다. 북한은 한반도 안팎에서 연합훈련이 전개될 때마다 즉각적으로 당국 차원의 비난 성명을 발표해왔다. 남북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는 등 실제 행동에 나선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죽음의 백조’로 알려진 B-1B 랜서 폭격기 등 미군 전략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출몰하는데도 북한이 침묵하는 건 석연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24일 우리 공군 F-15K, KF-16과 주한미군 공군의 F-16 등이 참가한 가운데 대대급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 한·미 공군이 대대급 이상 규모로 연합훈련을 한 것은 2018년 대북 대화 촉진 차원에서 대규모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를 유예한 이후 2년 만이다.
지난 22일에는 미국 본토에서 이륙한 B-1B 랜서 폭격기 1대가 일본 북부 상공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F-2, 미 공군 소속 F-16 전투기와 합류해 훈련을 실시했다. 미·일 항공기들은 동해를 거쳐 오키나와 인근까지 비행한 뒤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강원도 원산에 머무른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북한이 두려워하는 전략폭격기가 동해 상공을 지나간 것이다.
북한 당국은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움직임에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이 ‘무소속 민간방송’이라고 주장하는 대남 매체 ‘통일의 메아리’에 ‘김철주사범대학 교원 리영철’ 명의로 비난 기고문이 올라온 정도다. 미·일 훈련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됐지만 논평 없이 사실관계만 짤막하게 전했다.
북한의 태도는 한·미 군사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실제 행동까지 불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온도차가 상당하다. 북한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직후인 그해 5월 한·미 공군이 맥스 썬더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자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28일 “김 위원장의 통치력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김 위원장이 지시를 못 내릴 만큼 신상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며 “설령 김 위원장이 코로나19에 감염돼 격리됐어도 한·미 훈련에 대해 대응하라고 지시는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