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27일 개최한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태 특별포럼’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논의들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n번방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의 끔찍한 실태를 목도한 만큼,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미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본부장은 여전히 아동과 청소년 등 피해자를 유인해 만든 불법촬영물들이 유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한 불법촬영물을 매일 삭제하고 있지만, 다른 사이트나 플랫폼에서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다”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피해자들을 그루밍(길들임)해 유인하고 협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에 빠진 피해자들을 10대의 눈높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10대들은 말할 상대가 없거나 외로운 상황에서 그루밍에 쉽게 노출된다”고 진단했다. 김 본부장도 “실시간으로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 상, 성인 여성 역시 디지털 성폭력을 당했을 때는 삶이 파괴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n번방 등에서 유포된 불법촬영물을 ‘성착취물’로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다은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기존 성범죄는 직접접촉이 있어야 성립하지만, 성착취물은 신체접촉 없이 온라인 등에 실시간으로 공유돼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다르다”면서 “텔레그램 같은 공간에서 1대 1이 아닌 1대 다수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음란물’이 아닌 ‘성착취물’로 분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 역시 “아동‧청소년을 촬영한 불법촬영물을 음란물이라고 부를 경우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했다는 편견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관전자’ 등으로 불리던 유료회원 신상공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경찰은 지금까지 가상화폐 거래내역 등을 압수수색한 끝에 유료회원 40여명의 신상을 특정한 상태다. 김 본부장은 “n번방에 접속한 유료회원들은 성착취물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접속한 것”이라며 “고의성이 입증된 만큼 미국이나 호주처럼 처벌하고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역시 “수요 차단을 위해서라도 (신상공개가)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다. 반면 채 대변인은 “범죄가담 정도에 따라서 신상공개를 의논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지금까지 없었던 유형의 범죄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잠입수사와 함정수사 등이 더 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채 대변인은 “디지털 성범죄는 범행이 이뤄지는 링크부터 알아야 추적이 가능하다”면서 “다크웹이나 익명성이 강한 텔레그램 등의 메신저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잠입이나 함정수사 등의 수사기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등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 기법에 대응하기 위해 이를 막아내기 위한 기술 연구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태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방송기술정책과장은 “지금까지는 온라인 상에서 일일이 같은 이미지를 찾아 삭제 요청을 했는데 워터마크 등 변형이 있으면 쉽게 삭제가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 10초 정도의 영상만 확보돼도 이를 잘게 쪼개 고유한 DNA값을 확보할 수 있어 빠른 시간 안에 삭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