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으로 전격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인수인계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정무라인 15명과 함께 잠적해 부산시정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23일 3분 40초짜리 사퇴문 하나를 내놓은 뒤 오 시장은 물론, 자신이 임명한 정무부시장 등의 행방조차 오리무중이다. 특히 이들 정무직 공무원 15명은 굵직굵직한 부산시의 각종 사업과 행정에 개입해 정보독점과 밀실행정을 일삼아 왔던 터라, 오 시장의 치졸한 행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게 번지는 상황이다.
27일 부산시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오 전 시장은 사퇴 성명을 발표하고 시청을 떠난 뒤 행적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 전 시장 사퇴로 15명의 정무라인 가운데 13명은 자동면직되고, 임기가 보장된 2명은 사직서도 내지 않은 채 함께 잠적했다.
오 전 시장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부산시 행정직 공무원들 사이에선 2018년 7월 취임후 1년 10개월간 부산시 조직을 망쳤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존 행정직 공무원들을 제껴놓고 선거캠프에서 함께 했던 박태수 전 정책수석보좌관 등을 불러들여 주요 시정을 거의 다 맡겼다는 것이다. 이후 공무원 조직과 충돌하면서 박 전 수석은 물러났지만, 장형철 정책수석보좌관과 신진구 대외협력보좌관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정무라인은 막강한 권한으로 주요정책을 좌지우지했다. 김해신공항 검증 총리실 이관, 부산구치소 이전, 원전해체연구소 공동 유치 등 현안 해결에도 막후에서 주도했다. 전임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던 사업을 전면 중단시키며 잡음도 야기했다. 최대 현안사업이던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오 전 시장의 정무라인 간섭으로 무산된 것이란 말도 나온다. 버스중앙차로제(BRT), 부산항 북항재개발 사업지역 내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 등도 취소했다가 여론에 따라 다시 시행해 건설기간만 지연시켰단 평가를 받는다.
오 전 시장이 임명한 유재수 경제부시장도 뇌물비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조국 사태 관련 딸 특혜 장학금 연루 의혹을 받는 노환중 전 양산부산대학교병원장을 부산의료원장에 임명함으로써 부산시청은 4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런 실태는 여론조사로도 여실히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해 10월 시행한 시장·도지사 직무수행평가 조사에서 오 전 시장은 꼴찌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 전 시장은 물론 정무라인도 잠적해 버려 시정 공백과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와 권한을 독점하다가 중요하고 민감한 업무를 아무런 인수인계 없이 손을 떼면서 추진 과정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져 당황스럽다”면서 “오 전 시장은 각 국실장의 결제에 앞서 정무라인의 우선 협조를 얻어 오란 식으로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권력이 정무라인 쪽으로 기우는 문제가 있었다”고 비난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