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의 끝자락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트란실바니아의 영주 드라큘라는 운명적 이끌림에 영국으로 성을 옮기기로 했다. 법적 업무를 맡아줄 젊은 변호사 조나단과 그의 약혼녀 미나는 초청을 받아 드라큘라의 성에 도착했다.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운명적 만남이 이뤄졌다. 미나와 마주한 드라큘라는 전율을 느꼈다. 미나가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다닌 여인이라고 확신한 드라큘라는 조나단의 피로 젊음을 되찾고 미나를 유혹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성에 섬뜩함을 느낀 조나단은 미나를 서둘러 영국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미나의 머릿속에는 드라큘라가 떠나지 않았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이끌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성을 앞세워 밀어냈다. 드라큘라는 미나의 친구 루시부터 파괴했다. 루시를 둘러싼 남자들과 오랫동안 뱀파이어를 쫓아 온 한 남자 반 헬싱, 그리고 조나단은 드라큘라의 파멸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대장정의 여정이 시작됐다. 드라큘라는 어떤 마지막을 맞이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공연을 중단한 지 20일 만인 지난 21일 뮤지컬 ‘드라큘라’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만일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공연장 곳곳에 묻어났다. 모든 관객과 스태프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열화상 감지 카메라를 운영하면서 관객 한 명 한 명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열을 체크했다. 출입구는 단 한 곳만 개방했다. 나머지는 폐쇄했다. 유일한 출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관객의 열을 체크했고, 재입장시에도 예외는 없었다.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문진표도 수집했다. 작성에 소요되는 시간과 혼란을 줄이고자 온라인으로 작성해 제출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했다. 문진표에는 좌석번호, 해외 출국 여부 등을 기록하도록 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역학 조사 등을 위해 정부에 제출할 용도다. 오랫동안 공연을 기다렸을 관객을 위한 이벤트도 마련됐다. 유료 공연 예매자에 한해 재개막 21일부터 26일까지 캐릭터 엽서를 제공했고, 2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는 L홀더를 선물한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이번이 삼연이다. 그 중심에는 김준수가 있다. 초연에 이어 재연, 이번 삼연까지 드라큘라 역을 맡았다. 파워풀한 가창력과 섬세한 감정 표현, 관중을 압도하는 몸짓에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관 문을 닫고 들어갈 때는 숨막히는 고요함이, 그 문을 열고 등장할 때는 웅장하면서도 기괴한 공기가 흘렀다. 한 여인을 향한 어긋난 사랑과 이뤄질 수 없는 운명에 탄식하는 그가 하늘 위에서 관을 타고 내려올 때는 섬뜩함마저 들었다.
이번 삼연은 뱀파이어 장르물의 클리셰를 완벽히 구현하면서 그 안의 감정선을 촘촘히 잡았다. 무대는 음산하면서 관능적이었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 선 드라큘라는 처절했으며,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이끌림을 받아들이는 미나의 모습은 처연했다. 도식적이었지만 진부하지 않았다. 그동안 드라큘라와 미나가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 급작스러워 납득할 수 어렵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만큼 대사를 대폭 수정했다. 탄탄해진 전개와 눈빛 그리고 음악으로 감정을 이어가며 핍진성을 잡았다.
무대예술 기법은 단연 최고로 꼽힌다. 19세기 유럽의 고딕풍 디자인과 트란실바니아 성을 감싸는 몽환적인 푸른 안개, 저 멀리로 보이는 서늘한 하늘 표현은 극의 기괴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무대는 극 내내 돌아갔다. 4중 회전 턴테이블이다. 거대한 여러 무대 기둥이 시시각각 따로 또 같이 조립되면서 여러 세트로 변신했다. 드라큘라의 성이었다가, 공동묘지였다가, 런던 시내였다가 드라큘라와 사랑을 나누는 침실이 되기도 했다.
드라큘라가 잠드는 관의 역동성도 눈길을 끌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가, 일어나고 또 눕기도 했다. 플라잉 기술과 스탠딩 기술을 도입해 극에 몰입감을 더했다. 한 여인을 사랑하기 위해 영원의 삶을 선택한 드라큘라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여인 미나가 만들어내는 죽음을 초월한 세기의 러브스토리에 입체적인 무대 예술이 더해 상상 속 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
웅장하면서도 서글픈 음악도 감정을 고조시켰다. 천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이고 애절한 넘버는 음악이 그 자체로 스토리와 캐릭터가 되게 했다. 특히 대표 넘버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드라큘라와 미나의 애절한 마음을 표현한 아름다운 듀엣곡으로 손꼽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