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4만8000명을 웃기고 울리다

입력 2020-04-27 13:04 수정 2020-04-27 15:43
조성진. 뉴시스


26일 오후 11시, 심야시간에도 도이치그라모폰(DG) 유튜브 채널은 이 아티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온라인 관객’들로 붐볐다. 공연 시작 10분 전 2000명 남짓했던 관객은 공연 시작과 동시에 2만명을 넘어섰고, 선율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4만8000명까지 늘어났다. 그의 손이 피아노를 주무르면 댓글 창에서 “놀랍다”는 탄성이 터졌고, 공연이 끝나면 “브라보”가 한글로, 영어로, 일본어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요일 늦은 저녁을 뜨겁게 달군 이 아티스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이날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무관중 온라인 공연 ‘모멘트 뮤지컬’에서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유감없이 펼쳤다.

프로그램은 총 3곡으로 구성됐다. 조성진은 브람스의 ‘인터메조 6개의 피아노 소품 중 6번(간주곡)’과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1번’,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했다. 베르크와 슈베르트 곡은 조성진이 다음 달 8일 선보이는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 공연은 독일 베를린의 유서 깊은 콘서트홀인 마이스터홀에서 사전녹화된 것이었다.


조성진. 뉴시스


40분 동안 그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손목의 탄력으로 타건을 조율하고, 페달을 섬세하게 활용해 음악적 완급을 완숙하게 표현해냈다. 곡 전체적으로 난도가 상당했음에도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연주를 위해 세계 곳곳을 오가면서도 하루에 3~4시간씩 빼먹지 않고 피아노를 친다는 그의 노력이 연신 묻어났다.

이 공연의 백미는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한 후반 20분이었다. 연주가 끝난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경쾌하면서 웅장한 터치로 곡을 열었다.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성진은 음악의 긴장을 자유로이 조절해 여백을 만들었고, 그 안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앞서 선보였던 브람스, 베르크의 부드러운 선율과 대조를 이루면서 더 큰 감정적 고양을 느끼게 했다.

도이치그라모폰의 준비도 돋보였다. 카메라는 조성진의 진지한 얼굴과 활보하는 손가락을 비추다가도 극이 이완할 때 와이드샷으로 전환하며 콘서트장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관계자가 유튜브 실시간 채팅에 참여해 연주되는 곡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관객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대답해주기도 했다.

열정적인 연주를 마친 조성진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다. 그는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최근의 불안정하고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이 곡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상황과 느낌을 잘 표현한 곡”이라고 했다. 비단 브람스 곡뿐 아니라 이날 선보인 3곡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신음하는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했다. 이날 공연 영상은 공개 시점으로부터 72시간 동안 도이치그라모폰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