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반화 되면서 자동차에 탄 채 오페라를 관람하는 ‘드라이브인 오페라’가 세계 최초로 등장할 예정이다. 자동차에 탄 채 영화를 관람하는 ‘드라이브인 영화관’이 순수 공연예술에서도 도입되는 셈이다.
영국 국립오페라(ENO)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런던 북부에 위치한 알렉산더 팰리스 공원에서 ‘드라이브인 오페라’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9월 초부터 3주간 ‘ENO 드라이브&라이브’라는 타이틀로 선보이는 드라이브인 오페라에서는 푸치니의 ‘라 보엠’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공연될 계획이다. 두 작품은 ENO가 앞서 전용극장인 런던 콜리세움에서 선보였던 프로덕션으로 야외에 맞게 수정한 후 60~90분 길이로 축약될 예정이다.
영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15만명, 사망자가 2만명을 넘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리스 존슨 총리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있다. 공연계의 경우 2020-2021 시즌이 시작되는 9월 전까지 모든 공연장이 문을 닫고 축제 역시 취소됐다. 2020-2021 시즌 역시 코로나19 이전처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NO는 다른 오페라극장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공연이 중단된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해 기존 레퍼토리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라이브 공연을 위해 이번 ‘드라이브인 오페라’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코로나19 여파로 실내 극장이나 영화관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드라이브인 영화관’은 문을 닫지 않은 것을 고려한 셈이다. 티켓 가격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첫 공연은 의료계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될 예정이다.
스튜어트 머피 ENO 최고경영자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드라이브인 오페라는 일종의 실험”이라면서 “이 실험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오페라 등 공연예술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등 좋아하는 대상을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싶어 한다. 즉 생생한 라이브 공연을 보고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면서 “이번 실험이 안전한 환경에서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드라이브인 오페라가 기획된 알렉산더 팰리스 공원 부지에는 약 300대의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다. 큰 차들은 관객들의 시야 확보를 고려해 뒷편에 배치될 예정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입장할 수 있다. 머피 최고경영자는 “드라이브인 오페라 극장에서 관객들은 박수를 치거나 ‘브라보’를 외치는 대신 경적을 울리고, 라이트를 깜빡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NO는 런던에서의 첫 시도가 성공하면 ‘드라이브인 오페라’를 영국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머피 최고경영자는 “ENO의 드라이브인 오페라가 성공하면 유럽의 다른 오페라극장들도 앞다퉈 도입할 것”이라면서 “드라이브인 오페라가 공연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에서도 자동차에 탄 채 음악 콘서트를 즐기는 ‘드라이브인 콘서트’가 25일 국내 처음 시도됐다. 용인문화재단이 25일 용인시민체육공원에서 주최한 이 콘서트는 용인시의 코로나19 극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렸다. 대중음악 중심의 이날 무료 콘서트에는 가수 린, 팝페라 그룹 ‘위아더보이스’, 싱어송라이터 구현모 등이 출연했다.
용인문화재단은 콘서트의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면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차량의 이격 주차를 필수로 하고, 창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라디오 주파수를 지원했다. 시민들 역시 거리두기를 지키며 자동차를 주차했고, 박수는 비상 깜빡이로 대신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