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왕 목사
미국 샴페인 어바나한인교회 교육담당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신약과 구약 관계없이 자주 언급되는 숫자가 바로 40입니다. 구약에서는 제일 먼저 ‘노아의 방주’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면서 사람의 죄악이 땅위에 가득 차게 되자,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실(창 6:6)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면에서 노아 가족 이외의 사람과 가축들, 기는 것과 나는 새까지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 위해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짓게 하시고, 40일간 비를 내리시게 됩니다(창 7:12).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두 돌 판을 받기 전, 모세가 금식했던 기간도 40일입니다(신 9:9~10).
그 40일간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어리석은 길에 서게 됩니다(출 32:4).
그 죄상을 보고 견딜 수 없었던 모세는 두 돌판을 백성 앞에서 깨뜨린 뒤 다시 금식하며 백성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린 기간도 40일입니다.
이어 출애굽 한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간 기간을 세어보니 40년이 걸렸습니다.
신약으로 와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에 가서 금식하신 기간도 40일입니다(마 4: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증인들에게 보이신 기간도 40일입니다(행 1:3).
현대교회도 사순절(四旬節:Lent)을 지키는데, 순(旬)'이 열흘을 뜻하기에 4번의 열흘 즉, 40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올해에도 모든 교회가 3주 전까지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보내며,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사순절은 교회사적으로, 예수님의 40일 간의 광야의 금식과 시험을 받던 수난을 기억하고, 그 정신에 동참하기 위하여 제정된 직접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또한, 모세의 시내산 40일 간의 금식과 엘리야의 40일 간의 금식,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간의 광야생활 등이 간접적인 배경이 되어 부활절 전에 행해지는 40일 간의 금식과 기도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40년, 40일, 40시간 아니 40분조차도 갈 길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지루한 시간일 수 있는데, 믿음의 조상들은 참 끈기와 인내심이 대단하신 분들 같습니다.
아무래도 수많은 죄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향해, 끝까지 인내하고 참으시는 하나님을 닮아서 그런 가 봅니다.
이제 4월 말일(30일)이 되면,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도 자택격리령이 발효된 지 40일이 됩니다. 근 40일을 힘겹게 버텨 오고 있는 와중에 5월 1일부터 Retail Shop은 6 Feet 룰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가게들이 슬슬 문을 열 준비를 한다는 소식입니다.
2020년 봄, 힘겹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난한 ‘자가 격리’의 모범이 되는 설화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설화에도 곰과 호랑이가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먹으면서 어두운 굴속에서, 백 일간 햇볕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나도 편리함에 익숙해 진 현대인들에게 전등 불, 생수 병 하나 없는 동굴에서 곰과 호랑이는 어떻게 버텨냈을까요?
설화이기에 허무맹랑하지만, 필자는 이 설화에서 작게나마 인사이트를 얻습니다. 청년들이 쓰는 말로 ‘존버’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존버는 ‘끝까지 버틴다’는 의미의 속어입니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Hang in(버틴다), Patient(인내심이 강한),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 Don't quit(멈추지 마) 따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갑갑하고, 밖으로 뛰쳐 나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억눌러야 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버티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일상을 누릴 날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십계명 두 돌 판을 받아서 시내광야까지 내려오기까지 40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40일을 참지 못하고, 우상 숭배의 덫에 걸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참고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자가 격리를 하고,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정부의 방침에 순종하면 되는데, 뉴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방침을 어기는 민망한 소식들이 들립니다.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냅시다. 자가 격리 기간 40일이 지나고 또 40일을 버티라 할지라도.
우리가 신호등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곧 바뀔 거라는 걸 알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