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군부가 국가봉쇄 나서… 소극적인 총리 ‘패싱’

입력 2020-04-26 16:47 수정 2020-04-26 17:33
파키스탄 무장경찰이 지난 3일 금요 예배날 자동 소총을 들고 코로나19로 폐쇄된 모스크 진입로를 지키고 있다. EPA연합뉴스

파키스탄의 실권을 쥐고 있는 군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권력 독주의 기회로 삼으면서 파키스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민·군이 코로나19 대응 관련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통에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파키스탄 군부는 코로나19 관련 국가 봉쇄에 소극적인 임란 칸 총리를 노골적으로 ‘패싱’하고 강경 봉쇄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군부는 코로나19 대처라는 명분 하에 파키스탄 전역에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이달 초부터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이 정책 조율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핵심위원회를 군부가 장악하고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와 군부의 갈등은 지난달 말 본격화됐다. 칸 총리는 지난달 2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국가 봉쇄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쇄 조치가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잃게 하고 대규모 기아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탓이었다.

하지만 군부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정부 결정을 번복했다. 군 대변인은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현시간부로 군이 국가 봉쇄를 감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은퇴 장성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큰 공백을 노출했다”며 “군부는 그 공백을 채워야만 했다. 거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FT는 “군부는 코로나 위기를 자신들의 위기 관리 능력을 증명할 기회로 포착했다”고 평가했다.

파키스탄 군부는 1947년 국가 독립 이래 문민정부와 번갈아 국정을 맡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군이 코로나19 위기 이후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칸 정부조차 군부의 간접적 영향권 아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NN은 파키스탄 군부가 코로나19 대응의 전면에 선 이유에 대해 “막후 영향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중앙에 집중시켜 놓으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파키스탄은 지난 2010년 헌법 개정을 통해 4개 주에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했는데 군부 등의 세력은 이에 반발하며 지속적으로 자치권을 약화시키려 애써왔다. 지방에 분배된 권력을 중앙으로 되돌려 권력 독주를 심화하려는 목적이다.

남아시아 지역 전문가인 사잔 고헬 런던정경대 초빙교수는 “파키스탄은 국가 봉쇄와 관련해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일관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코로나19는 파키스탄 중앙정부, 지방정부, 군부의 단절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