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바이러스가 아니다” 코로나 낙인 걱정 완치자들 ‘흑흑’

입력 2020-04-26 16:04

대구의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아파트에서 확진자를 발본색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발본색원’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섬뜩했다.

A씨는 2월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지난 5일 완치된 ‘코로나19 완치자’다. 몇몇 아파트에선 “몇 동에 확진자가 있으니 조심하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아직 흘러나오고, 확진자 신상정보가 게시판에 붙어 있다고 한다. A씨는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복을 입고 집에 들락날락해 이웃은 내가 확진자라는 걸 알 것”이라며 “확진자라는 낙인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명 안팎을 유지하는 등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완치자 숫자도 8717명으로(26일 0시 기준) 전체 확진자의 81.3%를 기록했다. 확진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완치된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 완치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코로나19 완치판정을 받은 20대 대학생 B씨는 최근 불쾌한 일을 겪었다. B씨 가족은 B씨와 동생, 어머니까지 3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가 지난달 완치돼 집으로 돌아왔다. B씨 옆집의 이웃은 B씨 가족이 돌아온 후부터 엘리베이터 단추 등에 소독제를 뿌리기 시작했다. B씨는 “이해는 가지만 우리 가족을 보균자 집단으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B씨는 “입대해도 누가 확인하지 않는 이상 감염됐었던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함께 입대한 동료들이 자신을 피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B씨는 “군대 전역 후에는 취업을 해야 할 텐데, 불이익이 있을까 염려된다”는 얘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떠도는 ‘코로나19에 걸리면 폐가 손상된다’ ‘완치자는 재확진 가능성이 더 크다’ 등의 유언비어도 확진자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B씨는 “바이러스가 체내에 남아 언제든 발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격리 해제된 지 한참 지났지만 주변 사람들이 꺼릴 것을 우려해 여전히 자발적 격리 중인 완치자도 적지 않다. A씨는 ”2달 넘게 가족 외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다”며 “직장 복귀를 하는 다음 달 13일부턴 사람들을 만나야 할 텐데 그 전에 자비로 검사를 다시 해 주변을 안심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B씨도 “누구에게 밥 한번 먹자고 말하기도 눈치 보인다”며 “퇴원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가족들 외에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슬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애쓰는 완치자도 있지만 그들도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50대 직장인 C씨는 상사로부터 “다른 직원들이 불편해 할 수 있으니 2주 정도 더 쉬고 출근해줬으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2주를 더 쉰 뒤 지난 6일부터 출근한 C씨는 “표현은 안 하지만 직원들이 내게 더 거리를 두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감염병에 걸리고 싶어 걸리는 사람은 없다”며 “내가 조심하지 않아 확진 받았다는 시선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씨도 “완치자들을 감염자라고 색안경 끼고 보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를 극복해낸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