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쪽잠 대기 여전…“새벽부터 오지 않아도 됩니다”
지난 23일 오전 9시 서울에서 소상공인 초저금리 대출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 중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서울중부센터를 찾았다. 사무실로 향하는 계단까지 줄을 서고, 빗발치는 문의로 복도가 시끄럽게 울리던 대출 시행 첫날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대출 접수와 신청이 진행되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도 보이지 않았다.
“줄을 서있는 분들이 안 계시네요?” 기자가 묻자, 센터 측에서는 “문 열기 전부터 와 계신 분들이 계셔서 오전 일찍 번호표부터 나눠드렸다”며 “배정된 시간에 다시 오면 된다고 안내해서 굳이 센터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도록 불편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소진공은 대출 신청을 위해 방문한 소상공인들이 센터 앞에서 오래 대기하지 않도록 번호표를 배부해 불편을 줄였다.
센터가 문을 열자마자 현장 접수가 끝났던 첫날과 달리 이날은 오전 9시 기준 현장 접수 가능 인원이 30명 가까이 남아있었다. 대출 접수와 신청도 하루 만에 가능했다. 시행 첫날에는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도 접수와 신청이 하루 만에 진행되지 않는다며 소상공인들을 되돌려 보내 원성을 샀었다. 지금은 시행 첫날 지적됐던 문제들은 상당 부분 해소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새벽부터 줄을 서는 풍경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날도 ‘1번’ 번호표를 받은 이모(43)씨는 새벽 2시에 센터를 찾았다. 이씨는 “선착순이라 일찍 가지 않으면 대출을 못 받는다고 들어서 서둘렀다. 오는 길에도 늦을까봐 조마조마했다”며 “그런데 오늘 유독 사람이 없는 건지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더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새벽부터 센터를 방문해 계단 구석에서 쪽잠을 자던 이들이 여전히 적잖았다. 오전 4시 센터에 도착했다는 한 상인은 “주변에서 일찍 가야한다고 해서 새벽같이 왔는데 나는 7번을 받았다”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더라”고 말했다. 오전 8시에 방문한 신모(63)씨는 “주변에서 일찍 가야한다고들 해서 서둘렀다”고 했다. 신씨는 대기 번호 ‘18번’을 받았다.
오히려 오전 10시 이후에 센터에 도착한 이들은 기다리지 않고 대기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오후 1시 이후 방문 시간을 지정받고 돌아갔다. 센터 한 관계자는 “지금은 수요가 초기처럼 넘치지 않으니 새벽 이른 시간에 오지 않아도 충분히 신청할 수 있는데 아직 많이들 모르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중부센터에서만 매일같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소상공인들이 20명 안팎 정도라고 한다. 한창훈 소진공 서울중부센터장은 “요즘 현장에서는 50~60명 정도, 온라인으로는 30명씩 신청을 받고 있다”며 “전에 비하면 한꺼번에 너무 몰리지 않고 수요가 많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유연하게 바뀐 현장…높아진 접수 편의성
바뀐 건 또 있다. 더 이상 굳이 ‘홀짝제’를 고수하지 않고 있다. 시행 초기에는 출생년도에 따라 홀수일엔 홀수해, 짝수일엔 짝수해에 태어난 이들의 신청만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실수로 홀수일에 방문한 짝수년도 출생자를 다시 돌려보내는 상황은 빚어지지 않고 있다.
한 센터장은 “홀짝제를 만든 이유는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였는데, 이제는 센터를 찾는 사람이 몰리지 않아 굳이 돌려보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기 인원이 너무 많지 않은 이상 날짜를 잘못 방문했더라도 신청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신용 등급을 조회하는 전용 공간, 서류를 제대로 준비해 오지 못한 경우 부족한 서류를 바로 출력할 수 있는 공간 등도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접수를 마치면 번호표대로 대출 신청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대출 신청 방문자들의 동선 안내에 대한 직원들의 매뉴얼도 갖춰졌다. 소진공 지역센터 직원들과 대출을 받으려 방문한 소상공인 모두 시행 첫날에 비해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업무 처리 속도도 빨라졌다. 한 센터장은 “처리 과정도 안정되고 수요도 줄어서 공단에서 파견 왔던 직원 2명 중 한 명은 원래 있던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며 “많을 때는 하루에 100건씩 처리하기도 했는데 요새는 70~80개 정도를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금 조기 소진 우려…대출 규모 늘리고 2차 지원책 마련
정부는 지난 22일 진행된 제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소상공인 긴급대출 프로그램 지원규모를 12조원에서 16조4000억원으로 4조4000억원을 늘린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연 1.5%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지원책이 기금 소진으로 끝나더라도 금리, 한도, 지원조건 등을 달리한 2단계 프로그램에 10조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소진공 대출에 배정된 2조7000억원은 이달 말쯤, 기업은행 초저금리 대출 5조8000억원은 다음 달 초쯤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초저금리 대출 기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소진공 직접 대출은 신청 대비 집행률이 74%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26일 “대출 수요가 시중은행으로도 분산되고 있어 소진기금만 따로 떼서 언제쯤 소진될 거라고 말씀드리는 건 어렵다”며 “시중은행 대출의 경우 할당된 재원이 3조5000억원이니 자금은 아직 넉넉하다”고 말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