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 되려면 사도 바울같이 목숨 내놓고 가야”

입력 2020-04-26 15:15 수정 2020-04-26 15:42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운데)가 1981년 광주신학교 2학년 재학시절 전남 화순 능주면 백암리 농가에서 개척한 백암교회에서 정금성 권사(왼쪽)와 처남 배영수 장로와 함께했다.


난 집안 환경이나 학벌, 외모나 체형 등 무엇 하나 남들보다 좋은 조건을 갖지 못했다. 단신의 키에 흔한 얼굴, 뱀 장사 큰아들 같은 목소리다. 더구나 지리산 자락에서 유교적 전통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살아가는 한 촌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사가 되기에는 그 어느 것 하나 장점이 없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씀, 오직 기도, 오직 은혜였다. 신학생 시절에 채플실에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나오지도 않는 마이크를 들고 설교와 찬양 연습을 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감동이 오면 수많은 나무를 미래의 성도라고 생각하며 막대기를 들고 마이크로 생각하며 설교 연습을 했다. 그렇게 예배실, 도서관, 아니면 기도원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무등산의 헐몬기도원에서 금식 겸 ‘굶식’을 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날 여자 성도 열대여섯 분이 내가 기도하는 곳 위쪽에서 그룹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하는 소리와 모습만 봐도 기도의 영성이 깊은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그룹의 기도 리더자는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한참 동안을 유심히 살펴본 후 그분에게 다가갔다. “집사님, 저를 위해 기도 좀 해주십시오. 저는 기도가 고픈 신학생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대뜸 나를 보더니 이런 말을 툭 내뱉었다. “주의 종이 되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목숨 내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것입니다. 요즘 신학생들을 보면 한숨 나올 때가 많아요.” 그리고 자기 기도만 하는 것이었다.
순간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세상에 저렇게 쌀쌀맞을 수가 있을까. 저 사람은 영통을 한 게 아니라 먹통을 했구먼.’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악을 쓰며 기도했다. “주여, 나를 저런 사람보다 7배나, 70배나 큰 기도의 영력을 주옵소서. 능력 있는 기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 사람들보다 더 큰 사랑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씩씩거리며 한참을 기도하고 있었는데 누가 옆에 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가 했더니 아까 내가 찾아간 그분이었다. 그렇게 쌀쌀맞던 분이 왜 그렇게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를 대하는지 놀랐다.
“기도 중에 실례합니다마는 아깐 정말 죄송했습니다. 깊이 기도하는 중에 말을 걸어 무심코 그만 그런 말을 해버렸습니다.”
이유인즉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책망의 감동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만난 그분이 몇 년 후 나의 장모님이 되셨고, 평생 믿음의 어머니요, 기도 은인이요 목회 현장에서 기둥처럼 영적 후견인이 돼 주신 정금성 권사님이다.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종을 잘 섬겼던지 전답 팔아서 교회를 건축했다. 농사짓고 장사해서 가난한 주의 종 가정을 먹여 살렸고, 씨암탉을 잡아도 국물 하나 자녀들에게 맛보이지 않고 주의 종을 대접한다고 교회로 가져갔다.
세상에서 많이 배운 분은 아니지만 주님 은혜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니까 수많은 교회에 무보수 간증집회와 신유집회를 다녔다. 오히려 집회를 간 교회 유리창이 깨졌거나 양철 대문이나 슬레이트 지붕이 파손된 것을 보면 그걸 수리까지 해 주시고 왔다. 병 나은 분이 너무 감사해서 금반지나 목걸이를 선물로 해 주면 그것도 그 교회 목사님께 다 드리고 왔다고 한다.
훗날 이분은 나의 영적 매니저 역할도 했다. 나는 원래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분을 나의 영적 매니저로 붙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나를 위해 기도하시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그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이런 훈계였다.


“소 목사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니 절대 교만하지 말고 겸손을 생명처럼 여기세요. 특별히 음란의 유혹을 조심하세요. 음란마귀는 간교한 여우처럼 달라붙어요. 만일 음란에 무너지면 머리카락이 깎이고 두 눈이 뽑힌 채 맷돌이나 돌리는 삼손의 모습이 된답니다. 그러니 영적인 성별을 재산으로 여기세요.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귀하게 쓰신대요. 사람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그러면 볼품없고 배경 없는 소 목사도 하나님이 크고 귀하게 쓰신답니다.”
이분은 나의 신앙생활과 목회현장에 대부분의 스토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혹자에게서 ‘소 목사는 지나치게 장모의 그늘 아래서 목회를 해 왔다’고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진작 교만했거나 음란에 넘어져 한국교회에 누를 끼칠 수도 있는 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장모님의 잔소리 때문에 오늘의 나를 지킬 수 있었고 한국교회에 큰 누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장모님과 또 장모님을 닮은 아내를 만나게 하려고 나를 광주로 보내셨다고 위로받는다. 두 사람의 잔소리는 신앙과 목회에 꽃씨로 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