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현행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임의제출 받은 물건은 압수수색 영장이 없더라도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5월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지하철역에서 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A씨의 휴대전화를 제출 받았다. 경찰이 A씨의 휴대전화를 조사한 결과, A씨는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여성의 치마 속, 다리 등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사진을 복제해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A씨에게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대한 5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씨가 체포현장에서 임의 제출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48시간 이내에 사후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지 못했다면 압수된 임의제출물은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언급하면서 2심의 판단을 지적했다. 앞서 대법원은 “현행범 체포 현장이나 범죄 현장에서도 소지자 등이 임의로 제출하는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고, 검사나 사법경찰관은 별도로 사후에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변호인은 이 사건 휴대전화기 제출의 임의성 여부에 대하여 다투지 않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지 않았다”며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던 휴대전화기 제출의 임의성 여부를 직권으로 판단하기 전에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하는 방법 등으로 더 심리해 본 후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