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헛발질’에 공화당 “이러다 대선·상원선거 다 진다” 한숨

입력 2020-04-26 08:38 수정 2020-04-26 10:51
트럼프, 코로나19 브리핑서 실책 연발
“주사로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 결정타
NYT “트럼프, 브리핑을 자기파괴 무대로 활용”
미시간주 등 격전지 여론조사서 바이든에 뒤져
코로나19 미숙한 대응이 가장 큰 원인
경제 재건엔 트럼프가 ‘적임자’ 반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공화당 내에서는 올해 11월 3일 동시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한 상태에서 이런 선거가 결과가 나올 경우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연일 생중계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관련 언론 브리핑은 그의 정치적 위상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고 NYT는 전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 “주사로 살균제를 몸 안에 집어넣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라며 황당한 말을 꺼낸 것은 결정타 역할을 했다.

NYT는 현직 대통령의 가장 큰 이점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파괴’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선과 상·하원의원 선거까지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에선 전패의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실업수당을 청구하는 미국인들이 26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최악의 경제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걱정거리다.

트럼프 진영에선 이미 빨간불이 켜 졌다. 현재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은 전체 선거자금이 더 많지만 올해 1분기만 놓고 보면 민주당이 더 많은 자금을 걷었다.

특히 NYT는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지난주 17개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공화당은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격전지에서 고전하고 있으며 올해 가을 미국 경제를 재건한다는 신호가 없으면 패배할 것 같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의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하락이 나타나고 있으며 유권자들을 두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슈가 코로나19의 지속이라고 NYT는 보도했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와 미시간주·플로리다주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힌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모두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공개된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주 여론조사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오차범위(±3.5%) 밖으로 뒤져 충격이 더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42%의 지지율을 얻어 50%를 획득한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8% 포인트 차로 뒤졌다. 미시간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41%, 바이든 전 부통령 49%의 결과가 나왔다.

24일 공개된 플로리다주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46%의 지지율로 43%의 트럼프 대통령을 따돌렸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플로리다주에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간발의 차로 뒤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미시간주·펜실베이니아주 등 러스트벨트(미국 중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와 플로리다주에서 승리하며 백악관을 차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공화당의 공포는 대선에 그치지 않는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놓을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로 상원의원 선거까지 도매금으로 패할 수 있다는 불길한 징조는 이미 나타났다. 메인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들의 선거자금 모금액이 민주당 소속의 도전자들에게 현격하게 밀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공화당에서는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에다 리먼 사태로 경제위기가 겹쳤던 2008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 공화당이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참패했던 악몽이 재연될까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박도 제기된다. 2016년 대선에서도 투표 전날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인들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미국 경제를 살릴 적임자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꼽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다 지금은 물밑에서 움직이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전면에 나섰을 때 실책을 연달아 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살균제 인체 투입 발언 역풍을 의식한 듯 매일 진행했던 코로나19 언론 브리핑을 25일 생락했다. 비난을 자초한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 다음날이었던 24일엔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22분 만에 브리핑을 끝내기도 했다.

대신, 언론과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주류 언론이 적대적 질문만 하고 진실과 사실을 정확히 보도하길 거부한다면 백악관 언론 브리핑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 있겠는가”라며 “그들(언론)은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리지만, 미국인들은 가짜뉴스만 얻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나는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거짓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았다”며서 “나는 주류 언론과 협력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민주당이 거짓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