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감’ 댓글 줄줄이…“불법촬영물,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입력 2020-04-25 09:34
서울 디지털민주시민모니터링단 활동 현장. 서울시 여성정책과 제공

지난해 10월 27일, 서울시가 기획한 디지털민주시민모니터링단(모니터링단)이 출범했다. 디지털 일상 속에서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모인 참가자 752명은 5주 동안 포털·SNS·커뮤니티에서 불법물 6337건을 적발했다. 참가자는 대부분 20·30대의 여성, 청년이지만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50대 중년과 70대 노인 등 다양한 세대가 동참했다.

디지털 성범죄물은 일상에도 만연해있다. 특히 일부 SNS는 n번방, 박사방, 고담방 유입경로를 퍼뜨리는 데 이용됐다. 하지만 현행법상 플랫폼 운영자가 신고된 불법물을 삭제·제재하고 그 결과를 알릴 의무는 없다. 신고된 4232건의 성범죄물 중 삭제가 확인된 경우는 13.9%(592건)에 불과하다. 모니터링단을 총괄한 서울시 여성정책과는 “일상 속 성범죄물을 신고하면 어떠한 과정과 속도로 처리되는지 체험했을 것”이라며 “문제를 체감하고 디지털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전문가도 대신할 수 없는 시민의 고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모니터링단에서 활동한 시민 3인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활동하면서 디지털 범죄자·관전자들의 욕망에 이입하느라 괴로웠다”고 밝혔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악성 유행어를 발굴하고, 이를 재검색해서 성범죄물과 악플을 수집했다. 여성 참가자들은 “누군가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면 불법촬영이 아닐까 두렵다” “나의 옷차림도 단속하게 됐다”고 활동 트라우마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발견한 시민들이 ‘뒤로가기’ 버튼 말고 직접 ‘신고하기’를 눌러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포털과 SNS, 얼마나 무책임한지 시민이 느껴야”

시민 모니터링단을 운영한 서울시 여성정책과는 “n번방사건이 있기 전인 2017년부터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과 범죄 추적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전문가·시민단체를 모아 디지털성범죄 예방TF를 만들고, 그해 10월에는 여론 공감대 형성을 위한 모니터링단을 모집했다.

시민들의 모니터링 성과에 대해 여성정책과 지명규 팀장은 “애당초 전문가 수준의 불법물 단속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라며 “성범죄물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 속에서 포털과 SNS 등 사업자들의 대응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허술한지 시민의 눈높이에서 봐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범죄를 근절하자는 시민들의 열망은 컸다. 지 팀장은 “참가자의 84%는 20·30대 여성, 청년이지만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중장년 남성과 70대 노인도 합류했다”면서 “현장교육은 어수선하기 마련인데, 기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감탄했다.

모니터링단 요원에 임명된 752명의 시민은 5시간의 모니터링 방법을 교육받고, 5주간 6337건의 디지털성범죄물을 적발, 4232건을 신고 조치했다. 대상 플랫폼은 ▲네이버·구글·다음·유튜브 등 포털 ▲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SNS ▲디시인사이드·인벤·루리웹·클리앙 등 커뮤니티 등이다. 신고된 게시물의 절반 이상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유포되고 유통됐다. 또한 4건 중 1건은 일반인을 노린 불법 촬영물이며, 당사자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뒤 성착취로 악용되는 디지털 그루밍 게시물도 3.7%에 달했다. 한편, 신고된 게시물이 삭제·제재 조치되고, 그 결과가 제보자에게 통보된 비율은 13.8%(592건)에 불과했다.
서울시 여성정책과 제공

지난해 1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진행한 '이름없는추모제' 현장. 디지털성범죄 피해의 고통으로 죽음에 이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이다. 사진작가 박이현 제공 @2mollypic

“디지털 범죄물, 이렇게 많을 줄이야”

시민들은 국민일보와의 통화 인터뷰에서 참여 동기와 활동성과를 설명했다. A씨(여·22)는 “디지털 성폭력에 당한 후유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름없는추모제 영상을 봤다”며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껴 범죄 신고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A씨는 게임, 유머 등 각종 정보가 오가는 커뮤니티를 담당했다. 주로 방문한 커뮤니티는 디시인사이드·클리앙·루리웹이다. 불법물을 암시하는 키워드를 검색하고, 불법 촬영물과 게시자 아이디를 채증해서 커뮤니티 운영진에게 신고했다. 5주간 총 10차례 모니터링을 하면서 매번 1~4개의 불법물을 발견했다. 대부분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불법 촬영한 사진이었다. A씨는 “피해자 얼굴은 교묘히 모자이크 처리해서 신고 사유를 ‘개인정보 침해’가 아니라 ‘이용상의 불편함’으로 골라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B씨(여·25)는 모니터링단 활동을 앞둔 지난해 9월, 눈앞에서 불법 촬영을 목격했다. B씨는 “빈자리도 많은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치마 입은 여성 앞에 서서 신체를 촬영했다”며 “막상 현장을 목격하니 몸이 얼었다”고 털어놓았다. 10여초 만에 제지하기 위해 일어섰으나 때마침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남성은 도망갔다. B씨는 “그때의 미안함에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피해자 지원에 관심이 생겼고, 모니터링 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B씨는 대형 포털인 네이버·다음·구글·유튜브에서 일주일에 3~4번, 매회 2시간 정도 모니터링 활동했다. 남초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악성 키워드를 모으고, 이를 포털에 검색해서 불법물 70건을 발견했다. B씨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을 검색했는데, 관련된 게시물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특히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대해서는 “성인인증을 하지 않아도 불법물이 많이 검색됐다. 나이 필터링이 안돼 미성년들이 피해물에 노출될 우려가 컸다”고 말했다.

C씨(남·40)는 약 2년 전, 개인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당해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 홍보에 이용당했다. 그는 “당시 SNS 측은 계정 비밀번호를 변경하라는 것말고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정보보안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며 모니터링단에 합류했다.

C씨는 대형 SNS·포털인 네이버·구글·페이스북·트위터에 성적인 단어를 주 2회, 각 2시간씩 모니터링했다. 주로 개인 블로그들이 검색됐는데, 연예인 얼굴과 나체사진을 합성하거나 노출이 강조된 특정 자세·신체부위를 확대한 사진들이 게시됐다. A씨는 “5주 동안 100여건의 불법 게시물을 신고했고, 그중 플랫폼이 조치했다고 알려온 것은 단 2건”이라고 말했다. 총 신고건수는 100건 정도였다. 대부분은 연예인 이미지물을 퍼나른 개인 블로그들이었다. 연예인 얼굴과 나체사진을 합성한 것이 10%였고 나머지는 노출이 강조된 특정 자세나 신체부위를 확대한 것들이었다.

“일상의 공포 생겨”

모니터링 참가자들은 범죄자·관전자를 추적하다 트라우마를 겪었다. 불법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와 게시물, 환호하는 악플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누적된 모니터링 활동 탓에 맞춤형 광고·자동완성어가 음란·불법물들로 오염됐다. 너무 쉽게 발견되는 불법 촬영물을 보면서 ‘나도 저런 범죄의 대상이 되겠구나’라는 일상의 공포도 생겼다.

A씨는 “대중교통이나 지하철을 탈 때면 카메라가 무서웠다. 앞사람이 휴대전화를 볼 때면 혹여나 촬영범죄가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그 결과물이 온라인을 떠돌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 “모니터링 전문가들도 괴로워한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면서 “처음엔 3시간씩 하던 모니터링을 나도 모르게 1시간, 어떤 때는 40분, 이렇게 조금씩 시간을 줄여갔다”고 덧붙였다.

B씨는 불법촬영물을 전시하는 블로그, 카페가 버젓이 운영되는 상황을 목격하며 절망했다. 그는 “거리의 일반인을 불법 촬영해 전시하는 블로그와 카페가 성행한다”면서 “누적된 게시물이 수천 건에 달하는 곳들도 많고, 매일 수백 명이 들락거리며,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 최소 5개씩 달리더라”고 놀라워 했다.

신고는 대답 없는 메아리

불법물을 신고해도 SNS·포털·커뮤니티 등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총 4232건의 신고 중 삭제가 확인된 경우는 13.9%(592건)에 불과했다.

B씨는 “불법 게시물이 주렁주렁 달린 블로그, 카페들을 포털 측에 신고해도 조치 결과를 통지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결과가 궁금하면 신고한 게시물에 주기적으로 접속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B씨는 “신고한 보람도 느끼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C씨도 대답 없는 메아리와 같은 신고 시스템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시민들의 디지털성범죄물 신고에 대해서 SNS 기업에 처리할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면서 해외의 사례를 제시했다. 예컨대 호주에선 디지털 성착취 관련 신고가 접수되면 불법물 게시자·SNS업체·사이트 호스트 등에 48시간 안에 삭제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 부과 등을 강제하는 ‘신속 삭제 제도(the Rapid Removal Scheme)’를 운영한다.

한편,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와 대응도 요구됐다. A씨는 “디지털 성범죄는 촬영·유포·관전까지 모든 것이 너무 쉽다”면서 “소수의 전문인력들로 맞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기관 및 전문 모니터링 요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없으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시민 하나하나가 힘을 보태야 한다는 제안이다. A씨는 “시민들도 인터넷을 이용하다 불법물을 봤다면, 놀라서 ‘뒤로가기’ 버튼 말고 ‘신고하기’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