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물량에 몸값 떨어지는 국채… ‘한은 역할론’ 커져

입력 2020-04-24 16:07 수정 2020-04-24 17:0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대규모 국고채 공급으로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이 오히려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역효과(구축효과)가 빚어진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채권 매입 의지와 기준금리 인하 여부 등에 국채 금리의 향방이 달렸다고 본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4일 연구보고서에서 “향후 결정될 3차 추경 적자국채와 기금채권 발행 규모, 한은의 매입 지원 의지, 기준금리 인하 여부 등에 따라 금리 상승폭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기금채가 올해 20조원 이상 발행되고 3차 추경 적자국채도 20조원 이상 공급될 경우 한은의 매입이 없다면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65~1.75%대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한은이 채권 매입에 나서면 국고채 10년물 금리의 하단은 1.40%까지 낮춰질 것으로 보면서 “당국의 적극적 경기부양 의지와 정책공조 필요성을 감안하면 5월 기준금리 인하가 검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2일 정부는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고용안정 특별 대책과 기업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고용안정 대책에 필요한 재원 10조1000억원 중 9조3000억원은 3차 추경에서 적자국채를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항공 해운 자동차 등 기간산업 지원을 위해서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산업은행에 설치하고 정부보증으로 기금채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수급 부담은 특히 만기 10년 이상인 장기물 금리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2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7.4bp(1bp=0.01% 포인트) 오른 연 1.532%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달 23일(10.7bp) 이후 한 달 만의 최대폭이다. 20년물과 30년물은 각각 5.2bp, 5.6bp 오른 1.627%, 1.652%로 마감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도 10년과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각각 전 거래일보다 0.1bp 오른 연 1.546%, 1.636%로 거래를 마쳤다. 30년물과 50년물은 각각 0.4bp 올라 연 1.659%로 마감했다. 반면 3년물(연 1.018%)은 1.8bp 내렸고 5년물(연 1.277%)과 1년물(연 0.873%)은 각각 1.4bp, 1.1bp 하락했다.

이자는 상대에게 얹어주는 웃돈이라 금리가 오를수록 채권을 발행하는 쪽에 불리하다. 채권 금리가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채권 가격(몸값)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경기침체기에 나타는 금리 상승은 경제에 더 부담을 준다.

대규모 채권 발행이 반드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2년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연 20조원 규모로 예금상환기금채권이 순발행됐지만 금리 상승은 제한적이었다. 이 연구원은 “당시에는 채권금리가 2011년 마지막 금리인상 이후 하락하는 시점이었고 남유럽 위기와 원화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 증가로 수급 부담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민형 안심전환대출 실행을 위해 20조원 규모의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했을 때는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세계적으로 금리가 반등하고 국내에서도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사라진 데다 2020년 적자국채 발행 증가 소식과 대규모 은행채 만기도래 등이 겹쳐 시장 부담이 커진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채권 매입 등 직·간접적 시장안정 조치 여부에 따라 금리 상승 폭과 기간이 달라지리라는 게 이 연구원의 진단이다.

정부 대책 중 소상공인 금융지원 확대(10조원 추가), 저신용등급을 포함한 회사채·기업어음(CP)·단기사채 매입(20조원),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채권(P-CBO) 공급(5조원 추가)은 주로 산업은행 등 정책은행의 대출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발행되는 정책은행채는 한은이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원은 “한은은 지난 9일 정책은행 채권을 직접매입 대상에 포함해 발행 증가로 금리가 급등할 경우 유통시장에서 매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투자 보고서는 정부 대책 중에서도 국가보증 기금채권을 발행하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 지원 방안이 채권시장 수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했다. 해당 채권이 5년간 한시적으로 운용되는 만큼 발행 만기는 5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발행금리는 기존 정부보증채인 예보채나 장학재단채와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되리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다. 이들 채권 5년물의 크레딧 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의 금리차)는 21bp 수준이다.

이 연구원은 “3차 추경 규모의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수조원 이상의 기금채가 함께 공급될 경우 일정 부분 수급 부담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한은을 향한 직·간접적인 채권 매입 요구가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대규모 채권을 어떤 방식으로 유통시장에서 소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당국의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