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끔 힘든 날이 또 있더라도 / 세상이 버거워질 때면 / 그저 지는 저 하늘을 더 바라다보며 같이 있자”(정민 솔로곡 ‘그날, 우리’ 中)
목소리에는 깊이가, 말투에는 신중함이 묻어났다. 팬들 이야기가 나오자 호흡을 가다듬었고, 음악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표정부터 변했다. 데뷔는 아이돌이었고, 그룹이 해체된 지금 이들은 아티스트로 불리길 원한다. 순탄하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은 곳곳에 있었지만 모든 과정을 자양분 삼아 다시 일어섰다. 지금의 이들을 있게 한 건 분명 음악이었다. 지난 17일 국민일보 사옥에서 그룹 ‘스피카’ 출신 듀오 킴보와 그룹 ‘보이프렌드’의 정민을 만났다.
-공백기를 어떻게 보냈나요.
보아 ‘스피카’가 해체되고 한동안 넋 놓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음악도 거의 안 듣고 많이 지쳐있었어요. 다 내려놨던 것 같아요. 관리를 안 하니 살도 많이 쪘었고요. 어느 순간 제 모습을 돌아보니 볼품없더라고요.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가이드나 코러스 작업을 계속했고, 그러다 보니 ‘내 것’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그때 보형이가 눈에 들어왔고 킴보를 결성하게 된 거죠.
보형 개인 앨범도 내긴 했는데 주로 여행을 다녔어요. 공연도 보고 전시도 보면서 심기일전했죠. 활동할 때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이 여유를 많이 찾은 것 같아요. 여러 고민을 하긴 했지만 노래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정민 ‘보이프랜드’가 해체되고 주로 곡 작업을 하면서 보냈어요. 앞으로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아질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속 고민했죠.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려고 노력했어요. 성숙한 가수가 돼야겠다고 다짐하고 힘들 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했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어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니 답은 하나더라고요. 노래하고 싶다. 그뿐이었어요.
-힘든 시기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보아 도태되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실력 좋은 후배들이 계속 나오고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때마다 조급해졌죠. ‘내가 경쟁력이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깨달았죠.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저 자신을 보여주자고요.
보형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죠. 가수인데 음악이 싫어지고 노래할 에너지도 없더라고요. 어떤 얘기를 음악에 담아내야 할지, 어떤 감정으로 노래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다 재미가 없었어요. 그때마다 팬들이 보였어요.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늘 응원해줬어요. ‘아, 내 음악이 좋은 영향력을 줬구나’ 생각했어요.
정민 아이돌 활동 당시 쉴 틈 없이 열심히 달렸어요. 그게 지름길 같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해체가 되고 보니 막다른 길인 것만 같았어요. 돌아갈 수도 없고 막막했어요. 미련도 남아있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할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거든요. ‘에이 뭐 있겠어. 다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냥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아이돌 활동 당시와 지금의 음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보아 그룹 활동 당시에는 모든 게 만들어진 상태였어요. 물론 실력이 가미돼야 비로소 무대가 완성됐지만 제 역할이 크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그게 불만이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편하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할 일이 많아서 오히려 더 복잡하고 바빠요. 스스로 색을 찾아야 하고 방향을 정해야 했죠. 곡 작업에도 참여할 부분이 늘어나면서 힘에 부치긴 해도 뿌듯해요.
보형 음악 작업 외에도 여러 업무를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니 배우는 게 참 많아요. 내일이 기대된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3년 후에 내 모습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정민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하나의 완성된 곡을 얻기 위해 제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아졌어요.
-곡은 어디서 영감을 얻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나요.
보아 작곡가와 작사가가 포함된 저희 팀이 있어요. 다 같이 모여서 처음부터 의견을 공유해가며 진행해요. 보형이 스타일대로 작업한 곡과 제 스타일대로 작업한 곡을 모두 모여서 들어보고 토론하는 식이죠. ‘이걸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이런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시작해요.
보형 처음부터 틀에 박아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고치고 더하며 만들어가고 있어요. 음악은 외로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매번 재미있고 유쾌하게 작업하고 있어요.
정민 ‘지금부터 작업해야지’ 생각하고 책상에 앉으면 오히려 안 돼요. 멍하니 책 읽다가 좋은 구절이 생기면 그때 가사를 쓰고,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떠오르면 곡을 만들고 그런 식이에요. 거기에 제 상상력을 더해서 풀어가는 거죠. 재미있어요. 어떤 날에는 동화책을 만드는 것 같고, 어떤 날에는 소설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 앨범을 어떤 의미를 갖나요.
보형 ‘thank you, anyway’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겁쟁이가 용기를 내서 난관을 헤쳐 나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에요.
보아 저희 노래는 직업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날, 우리’는 봄 시즌에 나온 노래여서 연인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라이브하면서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연인이 들어도 좋고, 이별을 겪은 사람이 들어도 좋아요. 이 노래를 듣고 누군가가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보아 어느 날 문득 ‘김보아’라는 가수가 떠올라 뒤적거리며 노래를 찾게 되는 가수였으면 좋겠어요. 그저 진득하게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가수요. 아 그러려면 국민가수가 돼야 하나요?(웃음)
보형 위로가 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노래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민 삶의 일부분이 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 제 노래를 들었을 때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남기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제 노래를 듣고 ‘그때 그랬지’ 하면서 추억할 수 있는 곡이요.
-음악이 갖는 의미는 뭘까요.
보아 음악은 치유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원하는 음악을 원할 때 찾아 들으면서 공감을 하고 위로를 얻는 것 같아요.
보형 친구 같은 존재예요.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오로지 집중할 수 있어서 걱정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마치 원더랜드로 데려가는 기분이랄까요(웃음).
정민 사차원 같아요. 음악을 들으면 여러 상상을 할 수 있고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잖아요. 슬플 때 들으면 슬픈 음악이 되고 기쁠 때 들으면 또 기쁜 음악이 되고요. 간접경험을 시켜주고 위로도 되고 공감도 되고 참 좋은 것 같아요.
-팬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보아 너무 보고 싶어요. 원래 19일에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취소됐어요. 기대했던 공연이라 아쉬워요. 팬들을 만나면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보형 당장 공연장에서 소통은 못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저희의 음악으로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싶어요. 조만간 공연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정민 못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빨리 만나고 싶어요. 그동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 잘 챙기세요.
박민지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