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대작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예술 작품에 제3자가 관여한 경우 이를 창작으로 보아야 할지 대작으로 보아야 할지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었던 사건이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다음달 28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조씨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술작품 제작에 2명 이상이 관여한 경우 이를 작품 구매자들에게 사전에 알려줘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오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예술분야 전문가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대법정에서 의견을 진술하도록 할 예정이다. 대법원의 공개변론은 오후 2시부터 약 1시간 진행될 예정이다. 대법원 홈페이지 및 네이버 TV,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중계된다. 재판 당일 오후 1시10분부터 직접 방청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청권을 배포할 계획이다. 공개변론 1개월 후 판결 선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측 공소사실에 따르면 조씨는 2009년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에게 1점당 10만원 정도 돈을 주고 자신의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했다. 또 자신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를 송씨에게 회화로 그리게 하거나, 자신의 기존 그림을 그대로 그려달라는 등의 작업을 지시했다. 이후 조씨는 그림들에 가벼운 덧칠 작업만 거쳤다. 조씨는 17명에게 그림 총 21점을 팔아 1억53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를 받았다.
조씨 측은 이에 대해 “조씨가 전적으로 작품 컨셉과 아이디어를 냈고, 송씨는 조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또 작품 제작에서 조수의 도움을 받는 건 현대미술의 보편적 관행이라고도 주장했다.
재판에서는 대작화가와 단순한 조수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미술계에서 제3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허용되는지, 제3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을 구매자들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통상적인 거래 관행인지 등이 쟁점이 됐다. 또 조씨가 직접 그림을 그렸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의 본질적인 동기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다.
1심은 이에 대해 조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송씨가 독립된 작업 공간에서 도구를 자율적으로 선택해 제작했다. 조씨의 조수라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창작에 기여한 작가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조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강조해온 것도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조씨가 창작 과정이 주로 송씨 등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1심을 뒤집고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송씨는 작가가 아니라 기술적 조수에 불과했다는 판단이다. 또 조씨가 작품을 직접 그렸다는 것이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