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e스포츠 대회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 프랜차이즈가 도입된다. 한국 e스포츠 역사상 처음 하는 시도다.
스포츠에서 프랜차이즈란 특정 본거지(연고지)에 대해 상업적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말한다. 스포츠 종목에서 프랜차이즈 권한을 얻은 팀은 연고지 내 선수 선발, 경기장 흥행권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쥐게 된다. 하지만 e스포츠의 경우 연고지 개념이 희미하고 ‘IP(지식재산권) 홀더’인 게임사가 중추적으로 대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기성 스포츠 사례를 그대로 대입할 수 없다. 북미, 유럽 등 타 지역에 뿌리 내린 e스포츠 프랜차이즈 사례를 보면 IP 소유자인 게임사가 주도하는 리그 생태계에 게임단들이 참여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정착해왔다.
한국은 e스포츠가 태동한 종주국이지만 여태껏 프랜차이즈 사례가 없었다. 시장 규모와 스폰서십 유치, 팬들의 구매력 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 프랜차이즈는 선뜻 공론화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약 2년간 프랜차이즈 도입을 고심해온 라이엇 게임즈가 칼을 빼들었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6일 “팀, 선수, 팬 등의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선순환 e스포츠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LCK를 수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성장시키겠다”면서 2021년부터 LCK 프랜차이즈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승강제 폐지, 2군 리그 신설, 선수 지원 강화(최저연봉 6000만원) 등이 외관상의 골자다.
LCK 프랜차이즈에 합류한 팀들은 기준에 맞게 의무적으로 2군 팀을 운영해야 한다. 팀은 선수 육성에 있어서 보다 주도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2군 리그는 향후 1군 팀에 선수가 콜업될 때 적응 기간을 단축하는 역할을 한다. 프랜차이즈 심사에서 탈락한 팀의 소속 선수들은 올해 하반기 드래프트 등의 과정을 거쳐 국내 다른 팀에 들어갈 기회를 얻을 전망이다.
국내 첫 e스포츠 프랜차이즈 도입이 20여년 가까이 정체된 국내 시장의 새 도약을 이끌 거란 평가가 나온다. 프랜차이즈가 도입되면 안정적인 투자 유치와 전문성 있는 마케팅 전략 수립, 그리고 팀 입장에서는 운영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창출할 기반을 닦게 된다. 프랜차이즈 후 예상 이상의 ‘대박’이 날 수 있다는 평가가 e스포츠 업계와 투자은행(IB) 등에서 나오고 있다.
프랜차이즈 참여 팀은 리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분배받는다. 중계권, 리그 스폰서십 외에도 매출 증대를 위한 리그 자체 사업이 준비되고 있다. 또한 팀 자체적으로 스폰서십을 유치하고 별도의 수익사업을 진행할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라이엇 게임즈측은 설명했다.
오지환 팀다이나믹스 대표는 “프랜차이즈 진입을 통해 국내 전통 스포츠들은 이뤄내지 못한 진정한 프로 스포츠 비지니스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박찬혁 한화생명 브랜드전략팀장(상무)은 “선수 수급의 측면에서 체계를 잘 갖춘다면 LCK만의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좋은 선수들이 좋은 풀에서 좋은 기량을 낼 수 있도록, 가령 연봉의 측면에서 급상승하거나 급하락하지 않도록 균형 있게 팀과 선수 간 계약을 조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e스포츠 대회가 전통이 있다고 해도 시장 크기에서 북미나 유럽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프로핏 쉐어링(이익 공유)을 정확히 산정해 달성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e스포츠 고위 관계자는 “그리핀 사태에서 보듯 한국 e스포츠는 20여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주먹구구로 운영됐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기준이 없다보니 선수와 팀 모두 비합리적으로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랜차이즈가 도입되면 프로 스포츠에 준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계약상의 비대칭,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LEC 등 타 리그, 프랜차이즈 후 비약적 가치 상승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e스포츠팀 밸류에이션 동향에 따르면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된 리그의 팀들은 눈에 띄는 가치 상승을 이뤄냈다. 지난해 프랜차이즈가 도입된 LoL 유럽 리그(LEC)의 소속팀 프나틱은 2018년 대비 약 5500만 달러(약 635억원)의 가치 상승을 달성하며 1억7500만 달러의 팀 밸류에이션이 매겨졌다. 프랜차이즈 2년 차에 접어든 북미(LCS)의 소속팀 TSM의 경우 지난해 기준 1억5000만 달러, 100 씨브스는 7000만 달러의 가치 상승이 있었다. 이들 게임단들이 여러 종목의 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회 규모를 감안했을 때 LoL팀의 프랜차이즈 합류가 게임단 가치 상승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LCK는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본선 직행 시드 3장을 보유한 마지막 비(非)프랜차이즈 리그다. 역사상 ‘소환사의 컵’을 5회 차지한 유일한 리그인 LCK는 ‘페이커’ 이상혁 등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e스포츠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재풀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유망주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이번 프랜차이즈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의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라이엇 게임즈 관계자는 “LCK는 축구에 비유하면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EPL)처럼 해외 시청자들이 국내 시청자 규모를 상회한다. LCK 결승전의 경우 최고 동시시청자수가 국내보다 해외가 5배 가까이 많다. 아마 국내 프로 스포츠 종목 중 독보적인 글로벌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건 LCK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앞서 라이엇 게임즈는 삼정KPMG 컨설팅 등 외부 자문을 통해 다양한 프랜차이즈 모델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LCK는 다른 리그 대비 더 빠른 시점에 당해년도 기준 흑자에 도달할 것이라는 자문을 받았다.
라이엇 게임즈 관계자는 “LCK는 타 리그 대비 매출 성장성이 높은 편”이라면서 “이 같은 예측은 매우 보수적으로 산정한 결과로, 실제 잠재력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라이엇 게임즈는 오는 6월까지 프랜차이즈 가입 신청을 받고 약 3개월간 평가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프랜차이즈 가맹비는 북미(LCS)와 비슷한 수준이다. LCK 잔류팀과 새팀 사이에 가입비 차이를 두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라이엇 게임즈는 프랜차이즈 심사에서 재무 건전성을 고려하지만, 팀 운영의 장기 비전에 더 큰 가중치를 두겠다는 뜻을 참가 의향이 있는 팀들에 전달했다. 단발적 투자가 아닌, 지속 가능한 게임단 운영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사모펀드 등의 거대 자본이 프랜차이즈 입성을 반드시 보장하진 않을 전망이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