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대한 분노로 부글부글”…‘이탈렉시트’ 여론 고조

입력 2020-04-23 17:46
“코로나19 위기 때 EU가 해준 게 뭐냐” 불만 확산
여론조사서 ‘EU 탈퇴 찬성’ 응답 49%
결속·연대 내건 EU 계속 분열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로마 의회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콘테 총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봉쇄 조치를 다음달 4일부터 일부 완화한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본 이탈리아에서 ‘이탈렉시트’(Italexit·이탈리아의 EU 탈퇴)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EU로부터 외면당했다는 배신감이 탈 EU 목소리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뭔가가 터졌다”며 “EU를 향한 분노는 이탈리아 정부 심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수도 로마의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는 EU로부터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얻지 못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컨설팅업체 테크네의 최근 조사에서도 EU 탈퇴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9%로 나타났다. 2018년 말 같은 조사 때보다 20%포인트 올랐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반 EU 감정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EU로부터 이렇다할 도움을 받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는 지난달 초 EU 회원국에 마스크 등 의료용품과 의료진 지원을 요청했지만 화답한 나라는 없었다. 평소 EU의 단결을 중시했던 이탈리아로선 서운함을 느낄만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탈리아가 제안한 EU 공동 채권 발행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진전이 없자 EU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친 EU 정당인 자유주의행동당조차 최근 당원들로부터 “왜 우리가 EU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필요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탈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정치적으로는 싹이 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EU 탈퇴가 도움이 된다면 ‘고맙다’는 인사 없이 작별을 고하자”고 언급하기도 했다. 살비니 상원의원은 공공연하게 EU 탈퇴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결속과 연대의 가치를 내건 EU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분열 양상을 보였다. 최근에는 경제 회생 방안을 놓고 회원국간 심각한 갈등을 빚어 교황이 단합을 호소하고 나섰을 정도다. EU 27개 회원국 정상은 23일 화상회의를 열어 경제대응책 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