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소비… 금융위기 후 최저 성장률

입력 2020-04-23 16:47 수정 2020-04-23 19:43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20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올해 1분기 한국 경제성장률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1년여 만에 최저인 -1.4%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민간소비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으로 줄면서 발목을 잡았다. 2분기에는 세계적 수요 위축에 따른 수출 악화가 한국경제를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460조9703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467조4949억원)보다 1.4%(6조5246억원) 감소했다고 23일 밝혔다. 금융위기 충격으로 전 분기 대비 -3.3%까지 주저앉았던 2008년 4분기 이후 최대 역성장이다.

지난해 1분기보다는 1.3% 늘었지만 이 역시 2009년 3분기(0.9%) 이후 10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증가폭이다. 국내에서의 실제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0.6% 감소했다.

박양수 경제통계국장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추정해볼 때 코로나19는 국내 1분기 성장률을 2% 포인트 이상 낮춘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장 크게 위축된 건 민간소비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시행과 함께 외출과 만남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1분기 민간소비는 전 분기 대비 6.4% 감소했다. 분기 기준으로 외환위기 여파가 컸던 1998년 4분기(-13.8)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민간소비는 1분기 전체 실질 GDP를 3.1% 포인트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예산 조기집행에도 정부소비는 0.9% 증가에 그쳤다. 건설투자와 설비투자는 각각 1.3%, 0.2% 늘었지만 역시 전 분기(7.0%, 3.3%)에 크게 못 미쳤다.

수출은 2.0% 줄었다. 자동차, 기계류, 화학제품 등이 고전하면서 반도체 수출 증가의 성과를 깎아먹었다. 수입은 원유를 비롯한 광산품과 자동차 등이 줄면서 4.1% 감소했다.

경제활동별로는 서비스업이 민간소비 급감과 함께 2.0% 역성장을 기록하며 1998년 1분기(-6.2%) 이후 최악의 업황을 겪었다. 운수업(-12.6%) 감소폭이 가장 컸고 도소매와 숙박음식업(-6.5%)과 문화 및 기타서비스(-6.2%) 등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제조업 생산도 1.8% 감소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도체 생산이 늘었지만 운송장비와 1차금속제품 등이 줄면서 ‘마이너스’로 뒤집혔다.

한은은 1분기 경제활동 수준이 이어져 2∼4분기 각각 0%씩 성장하면 연간 역성장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박 국장은 “2분기 성장률이 더 낮아지더라도 3분기부터 조금씩 회복해 4분기 경제활동 수준이 지난해 4분기와 비슷하게 된다면 0% 부근의 성장세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대 걸림돌은 대외환경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나라마다 달랐던 데다 수출 계약이 미리 이뤄지기도 했던 1분기는 그나마 여건이 나았던 편이다. 이달 1~20일 통관 기준 수출액만 보더라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9%(79억9000만 달러) 줄었다. 1분기에 ‘효자 노릇’을 한 반도체 수출은 14.9% 감소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피해가 커진 2분기는 수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며 “수출에 피해를 입은 기업의 올 하반기 회복 여부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2분기에는 수출 감소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내수 회복 속도를 낙관하기에도 이르다.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진정세를 이어간다면 민간소비는 다시 기지개를 켜겠지만 최근 고용 악화의 여파가 이를 제약할 수 있다. 지난달 취업자는 19만5000명 감소하며 2009년 5월(24만명 감소) 이후 가장 크게 줄었다. 일시휴직자는 집계를 시작한 1983년 3월 이후 최대 규모인 160만7000명을 기록했다. 박 국장은 “고용 악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부분은 내수에 다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우리도 사회적 격리가 5월 5일까지 가는 점 등 고려하면 민간 소비는 부정적 상황을 이어갈 것”이라며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2분기가 1분기보다 골이 더 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날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이달 초보다 1% 포인트 낮춘 -1.2%로 전망했다.

강창욱 박재찬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