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박수근’은 박인숙(76)씨가 썼다. 알려졌다시피 박수근은 살아생전에 지금 같은 명성을 누린 작가가 아니었다. 세상을 떠난 뒤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박수근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고독과 가난과 병고에” 시달린 불운의 작가였다.
그렇다면 ‘자연인 박수근’의 삶은 어땠을까. ‘내 아버지 박수근’에는 인터넷 검색이나 여타 책들에서는 접할 수 없던 정보가 한가득 담겨 있다. 예컨대 박씨는 아버지의 작업실 풍경을 묘사하면서 “화가의 화실치고 그렇게 깔끔한 공간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수근은 항상 붓 연필 물감 등을 정해진 자리에 놓아두었다. 딸에게 “인숙아, 이리 들어와 봐라”고 한 뒤 짓궂은 부탁을 할 때도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박수근은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딸에게 “어금니에 뭐가 낀 것 같으니 잘 파보라”면서 이를 쑤셔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는 “아버지는 내게 대자연이었다”며 “(아버지는) 내게 삶과 인간을 가르쳐주신 분,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인간은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몸소 일러주신 분이었다”고 말한다. 아버지 작품의 색감을 ‘갯벌색’으로 규정하면서 “(아버지의 선과 색을 보면) 서해의 고요한 갯벌을 보고 선 듯 어느새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박수근은 생의 마지막 순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내 아버지 장욱진’에서도 대가의 평범했던 삶과 비범했던 예술 세계를 두루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인 장경수(75)씨. 책에는 딸에게 한없이 살뜰했던 장욱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장욱진은 딸의 연필을 깎아 필통에 넣어주곤 했다. 딸의 머리를 잘라주거나, 딸한테 술 먹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술병을 거꾸로 그린 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다.
딸에겐 따뜻했지만 화가로서 장욱진은 철저하게 그림에만 몰두한,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예술가였다. 과거 한 일간지는 장욱진을 ‘최고가(最高價) 화가’로 꼽았는데, 이 내용을 전해 들은 뒤 장욱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림에 가격을 매기다니 난 슬퍼.”
남들은 모두 받기를 원하는 유명한 상들에 대해서 “재수 없다”고 쏘아붙이곤 했던 게 장욱진이었다. ‘내 아버지 장욱진’에는 이런 글도 적혀 있다. “누군가 당신 그림을 좋아하거나 아버지가 마음에 들면 나눠주기는 해도 그림이 돈으로 환산되는 무엇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잘 팔리는 화가가 아니라 당신이 그릴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으며 당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