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40년 만에 받는 명예 졸업장.

입력 2020-04-23 12:48 수정 2020-04-23 13:43

“강산이 4번이나 바뀔 40년 만에 고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니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아직 통보 받지는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목격했던 그날의 참상이 새삼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수감돼 고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 김모(58)씨는 23일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뒤늦게 광주시교육청에서 명예 졸업장을 준다니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당시 고교생 2학년이던 김씨는 5월 19일부터 시민군 짚차에 올라 김밥과 사이다로 끼니를 때우며 1주일 넘게 시위를 벌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온몸이 피범벅이 되는 광경을 직접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그해 5월 말 계엄군에게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수개월 간의 수감생활과 모진 고문까지 감당해야 했다. 고통은 더해져 학업과 정상 생활도 이어갈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상생활에 복귀한 김씨는 그나마 다행히도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살아왔지만 그날의 끔찍한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이따금 ‘악몽’에 시달리는 건 애교에 불과하다.

계엄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후유증으로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온몸이 쑤시는 등 적잖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환갑을 앞뒀지만 명예 졸업장이나마 고교를 졸업하게 됐다”며 “5월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울먹였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김씨가 명예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은 광주시교육청이 5·18 40주년 기념사업 차원에서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30여명의 명단을 찾아낸 덕분이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말부터 1980년 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시민군 활동이나 간호, 사망자 수습 등에 참여했다가 부득이하게 학업을 잇지 못한 학생들을 전수 조사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5년 준공된 광주 상무지구 5·18학생 기념탑에 수록된 56개 학교 247명의 학생 참여자 명단을 우선 확보했다.

이후 정식 졸업장을 받은 175명과 그동안 광주일고 등 학교 개별적으로 명예 졸업장을 받은 15명을 제외 했다. 나머지 57명 중 5·18 이전 학업 중단자와 전학 등의 이유로 확인되지 않거나 5월 단체 등과도 연락이 닿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 20개교 32명에게 명예 졸업장을 주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5월 단체의 최종 확인 절차와 해당 학교 협의를 거쳐 5·18 40주년 기념차원에서 김씨 등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할 방침이다.

광주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신수연씨는 “5·18학생 기념탑 등재자 명단을 기초로 5월 3개 단체들과 협의해 해당자들의 졸업 여부과 학적 현황을 전수 조사해 32명의 명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시교육청은 지난 2015년 5·18 당시 희생된 관내 중·고 학생 15개교 18명에 대한 구술 자료집 ‘5월 청소년을 기억하다’를 발간했다.

역사교사 출신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5·18에 참여한 학생들을 기억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역사교육 방안”이라며 “명예 졸업장을 포함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