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수사관 등이 미성년자로 위장해 수사하는 ‘잠입수사’ 기법을 도입키로 했다. 또 중대 성범죄 예비·음모죄를 신설해 합동강간 등 범죄를 실제로 저지르지 않고 모의만 해도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국무조정실과 법무부, 대검찰청, 경찰청, 여성가족부 등 10개 정부부처는 23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정부는 먼저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이 갈수록 은밀하게 이뤄지는 등 폐쇄성과 보안성 때문에 탐지가 어렵다”며 “잠입수사를 디지털 성범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피해자의 신고 등에 의존하지 않고 경찰이나 수사관 등이 미성년자 등으로 위장해 적극적으로 디지털 성범죄 사범을 적발하겠다는 것이다.
‘함정수사’라고도 불리는 잠입수사는 크게 ‘범의유발형’과 ‘기회제공형’으로 나뉜다. 이번에 정부가 도입하겠다는 것은 기회제공형 잠입수사다. 범의유발형이란 수사기관이 범죄자가 범죄 의사를 갖도록 꼬드기는 수사기법이다. 가령 경찰이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일반인에게 마약을 권한 뒤, 상대방이 이에 응할시 그를 검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법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또 수사기관이 범의유발형 잠입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는 향후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기회제공형 잠입수사는 마약상으로 위장하고 있는 수사관에게 자발적으로 마약 구매를 의뢰한 마약사범을 잡는 방식이다. 현재 마약·조직범죄 수사나 성매매 단속 등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법무부 측은 “그동안 검찰과 경찰에서 잠입수사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 이번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에서 시행을 결정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이미 불법성이 인정된 범의유발형 잠입수사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해 국민들의 온라인상 디지털 성범죄물 신고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정부는 각종 유형의 성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우선 중대 성범죄 예비·음모죄를 만들 예정이다. 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매죄’를 신설해 아동 음란물을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하는 행위도 처벌하기로 했다. 이런 법이 시행된다면 n번방 유료회원들을 처벌할 명확한 법적 기반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외에도 피의자가 도망했거나 사망한 경우 기소나 유죄판결 없이도 범죄수익금을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도 도입키로 했다.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도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는 아동과 성행위를 할 경우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이 기준이 16세로 높아지면 청소년과의 성관계를 ‘합의한 관계’로 포장해 처벌을 피하려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끝까지 뿌리 뽑는다는 자세로 온 역량을 모아 철저히 대응하여 국민 여러분께서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