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었는데”…죽음 앞에서도 끝내 놓지 않은 손수레

입력 2020-04-22 19:05
지난 5일 오전 5시20분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도로변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던 B씨(61)가 승용차에 치인 사고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철원경찰서 제공

고물을 수집하던 60대 남성을 차로 친 뒤 달아난 20대 운전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적장애를 가진 60대 남성은 사고 발생 사흘 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철원경찰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혐의로 A씨(26)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오전 5시20분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도로변에서 손수레를 이용하여 고물을 수집하던 B씨(61)를 승용차로 친 뒤 달아난 혐의다.

차에 치인 B씨는 사고 사흘 뒤인 지난 8일 오전 5시쯤 사고 장소로부터 600m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 주민은 평소 손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던 B씨가 보이지 않자 집을 방문했다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국과수 부검을 통해 피해자의 신체에 외력이 가해져 다발성 골절이 있다는 법의관의 의견 등을 토대로 주변 탐문 및 CCTV수사를 통해 교통사고 흔적을 확인하고 차량을 추적해 범인을 붙잡았다.

집 근처 CCTV에는 사고 당시 B씨가 다리를 절며 힘겹게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집에서 600m가량 떨어진 왕복 2차선 도로에 설치된 CCTV에는 5일 오전 5시20분쯤 승용차 한 대가 B씨를 치고 달아나는 장면이 남아있었다.

사고 직후 정차한 차 안에 있던 운전자는 20여초 뒤 차에서 내려 쓰러진 B씨의 주변을 돌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운전자는 끝내 구조하지 않은 채 다시 차를 타고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영상에는 사고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B씨가 1시간 뒤인 오전 6시20분쯤 스스로 깨어나 손수레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도 남아있었다.

경찰은 CCTV를 통해 달아난 승용차의 번호판을 추적한 끝에 사고를 낸 A씨를 검거하고 범행을 자백받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고라니를 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범행을 부인했으나 경찰이 확보한 CCTV를 보여주자 “너무 무서워서 달아났다”고 범행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주운전 여부는 사건 당시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사고 즉시 112나 119신고를 하는 등 구호 조치를 했다면 피해자가 사망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