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모님을 뵙지 못한다는 각오로 여기에 왔어요.”
대구 수성구 보건소에 있는 선별진료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검체 채취를 담당하고 있는 김형갑(29·공중보건의)씨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던 지난 2월 26일 대구에 도착했다.
김씨는 “3월 초엔 하루 최대 80건의 검체를 채취하기도 했다”며 “10명 중 6명 꼴로 확진자가 나왔다. 내가 검사하면 양성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죄송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8주라는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첫 발령일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 입소자의 진단검사를 맡게 됐다. 의료진 중 자원자는 김씨 뿐이었다. 그는 6㎏의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담당 공무원과 단 둘이 정적이 흐르는 병원 입구로 향했다. 김씨는 6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덮친 무거운 공기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영양제를 공급하는 콧줄을 끼고 있는 환자는 면봉을 넣기조차 힘들었다”며 “40여명의 입소자들은 다들 거동이 불편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탈진을 막기 위해 권고되는 방호복 착용 시간을 1시간가량 넘긴 3시간30분이 지난 후에야 검사를 마쳤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달부터 자가격리자 격리해제를 위한 진단검사도 맡았다. 방호복을 입은 채 수성구의 온갖 아파트를 다니며 층계를 오르내렸다. 가정방문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김씨는 “방호복을 보고 우는 아이를 40분 동안 달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웃픈’ 사연도 많았다. 김씨는 “뉴욕에서 입국한 한 20세 자가격리 여성은 계속 양성 반응이 나와 3주 동안 자가격리 해제가 되지 않자 마지막 검체 채취할 때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대 남자 유학생을 둔 한 가족은 집을 두고 친적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김씨는 “현관문 앞에 비닐로 감싼 식판을 두고 어머니가 아들을 부르더니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서 가는 상황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피로 누적으로 감기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현지 의료진은 이를 ‘코로나 스트레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나 노심초사했던 적이 많다”며 “내 건강보단 보건소가 문 닫을까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주에 발열 증세로 진단검사까지 받았다. 전날 밤 꿈에서 양성이 나올 정도로 잠을 설쳤다고 한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어머니의 응원은 아들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진단검사 전날에도 김씨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혹여 걱정하실까 평소 아껴왔던 전화를 참지 못하고 걸었다. 김씨는 “너무 우울해서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는 목소리만 듣고 아들이 아프단 걸 아셨다”며 “어머니의 격려(카카오톡 대화 사진) 덕분에 용기를 얻은 적이 많다”고 말했다.
대구 주민들의 응원도 든든했다. 김씨는 “식당에 가면 고기 한 점 더 얹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역 학생들이 그림편지(사진)를 보내주기도 했다.
김씨는 24일 정든 대구를 떠난다. 소속지에서 복귀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코로나19 발생지역으로 파견갈 생각이다. 그는 “처음 대구·경북지역에 파견된 공보의만 1040명이었는데 현재는 60명 뿐”이라며 “일손이 부족해 동료를 두고 떠나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