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금센터 보고서 돌아올 수 없는 ‘넥스트 노멀’시대 전망
중국의 ‘글로벌밸류체인’ 축소 불가피-반세계화 ‘G2 전쟁’ 서막
세계대공황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최대 경제침체 우려로 각국의 정책당국이 전례없는 부양책을 쏟아붓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1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발생한 원유선물의 ‘슈퍼 콘탱고(Super Contango)’ 사건은 실물경기에 2차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을 두고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슈퍼 콘탱고는 원유 선물시장의 경우 근일물과 미래선물 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이상 차이나는 현상을 일컫는데, 이날 5월물 WTI가 배럴당 -37.63달러로 떨어지는 바람에 6월물과의 차이가 55.9달러나 벌어졌다.
원유시장에서 발생한 슈퍼 콘탱고 사건은 이렇게 대공황이후 전례없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사회 전반이 코로나 사태 이전과 단절된 미래 즉, ‘소셜 콘탱고’를 암시하는 사건은 아닌지 우려를 자아낸다.
하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민을 당분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에 불을 지핀 점은 코로나를 핑계로 세계화와의 이별을 고하는 예고편처럼 들린다.
국제금융센터가 21일 내놓은 보고서 ‘코로나19 이후 달라질 세상:‘Next Normal' 시대로 전환’은 세계 각계 전문가와 유수한 기관들의 이유있는 분석과 우려를 총망라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가운데 유라시아그룹은 코로나19 사태를 ‘Chapter break’로,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Next normal’로 들어서는 국면전환의 분기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나타날 미래(Post-viral era)를 ▲분절된 세계 ▲경제∙금융 구심점 이동 ▲소비∙투자행태 변화 ▲사회취약성 표면화 등 4개 테마(9개 부문)로 분류해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이 ‘분절된 세계’로 치달을 가능성이다.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가 발발한 중국 중심의 글로벌분업사슬(GVC)이 자국내분업사슬(Domestic Value Chain)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중국으로부터의 공급차질은 그동안 비용을 최우선시 해 온 국제분업 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생산∙부품조달이 최종소비자 근처로 이동함에 따라 타국의 천재지변, 지정학 불안, 통상정책 변화 등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장관이 코로나19가 제조업체 회귀 가속화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한 데 이어 국가경제위원회(NEC)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이전비용을 100% 지원할 의사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DVC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윌리엄 바 법무장관 등 미국의 고위관료들은 트위터 등에 틈만 나면 세계화의 폐해를 언급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에 G2 즉 중국과 미국의 관계악화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코로나 19 발발 책임을 놓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두 나라의 갈등은 2차 무역전쟁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수입제품의 한시적(90일) 관세유예 방침에 중국산을 제외하는 등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대중 통상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RF)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미∙중간 1단계 무역합의가 11월 대선 이후에 파기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세계 배낭여행족들의 성지로 통하던 유럽연합(EU)은 어떻게 변화할까?
보고서는 1999년 이를 허용한 솅겐조약은 20년만에 무력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나아가 코로나19 피해를 막기위해 논의됐던 공동채권(Coronabonds) 도입에 대한 입장차가 첨예해 남유럽을 중심으로 반(反)EU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U 출범 초기부터 남∙북유럽이 생활방식, 시민의식 등에서 양립할 수 없어 ‘Two-track’ 유럽을 구축할 필요성이 거론돼왔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그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G2의 대립과 유럽의 봉쇄확대 우려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잠재적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맥킨지 등이 코로나19로 인해 서구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아시아가 역동성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빠른 회복력을 보이며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점은 위안거리다.
보고서는 아시아 대기업들은 사업 다각화와 수평통합으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해 위기국면에서 회복력이 탁월한 점을 꼽았다. 전세계 상장기업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간 순이익이 10배 이상 증가한 회사 중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기업이 56%를 차지하는 등 금융위기 후 성장을 이끈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반면 지난해 11월 팬데믹에 잘 준비된 국가로 꼽힌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등 상위 5개국이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수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등 서구지역이 예상과 달리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다만 아담 포센 피터슨국제연구소(PIIE) 소장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19가 신흥국 경제에 미칠 충격 등으로 금융∙교역 측면에서 높은 달러 의존도(over-reliant)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음을 들어 서구의 영향력 축소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자국우선주의 확대 등 다방면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면서 이에 따른 위험요인을 분석∙대비하는 동시에 기회요인을 적극 발굴하려는 노력을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온라인 거래가 기존의 전자상거래 중심에서 재택근무, 원격진료∙교육 등으로 확대돼 디지털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주요국들간 디지털 결제 및 통상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질 가능성을 예고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근무가 어려운 저임금 서비스직과 취약계층은 소득∙고용 충격과 의료비 부담으로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등 사회취약성이 표면화된 점이 코로나19 이후의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