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채용 연계 수습사원으로 한 광고회사에 취업했던 이모(28·여)씨는 지난 17일 회사로부터 정규직 채용이 어렵다는 통지를 받았다. 회사는 수습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하거나 그만두라고 했다. 앞서 매년 정규직으로 전환된 ‘수습 선배’들의 사례와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었지만 이씨는 결국 수습기간 연장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는 “3개월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그만두면 집세와 생활비를 마련할 다른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다른 일자리를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규직 전환 약속을 어긴 건 회사였지만, 이씨는 혹시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부터 생각했다. 이씨가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대목은 지난 2개월 간의 재택근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지난달부터 주 2~3회 재택근무를 했는데,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주도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3개월간 이어지면서 ‘고용절벽’에 내몰린 청년들의 불안감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절벽 앞까지 떠밀린 취업준비생들은 졸업과 취업 등 올 초 세웠던 모든 계획이 엉켜버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강제적으로 상반기 구직 활동을 포기한 취업준비생도 적지 않다. 지난해 8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업계 취업을 준비하던 또 다른 이모(26·여)씨는 입사를 희망했던 회사 대부분이 상반기 신규채용을 중단하면서 “올해 상반기는 반포기 상태”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서울 강남 인근에서 진행했던 ‘취업스터디’도 2월말부터 중단됐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 일정까지 연기되면서 이씨는 벌써부터 하반기 취업시장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특별한 구직활동 없이 그저 쉬고 있다는 이씨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 2020년은 내 인생에서 삭제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박모(24·여)씨도 “몇몇 기업은 아예 상반기 채용계획을 내놓지 않아 답답하다”며 “졸업 후 시간은 많아졌는데 정작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곳이 없어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취준생의 고용절벽은 통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통계청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일할 능력은 있으나 구체적 이유 없이 ‘쉬었음’을 선택한 인구가 지난달 236만6000명으로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쉬었음’이라고 답한 20대는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40만명을 넘었다.
올해 졸업을 계획했던 대학생들도 불확실한 미래에 선뜻 졸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충북의 한 대학에 다니는 정모(24·여)씨는 1학기, 여름방학 인턴, 2학기, 졸업 및 취업으로 이어지는 계획을 세웠지만 시작부터 꼬여버렸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숙사에도 입사할 수 있게 됐지만, 학교는 학생들의 기숙사 입사를 미루고 미루다 아예 취소해버렸다.
정씨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대학 인근의 친구 자취방을 전전하며 온라인 강의를 듣다 결국 뒤늦게 학기 중 휴학을 결정했다”며 “학기마다 학생 근로 장학생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해왔는데,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어쩔 수 없이 휴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