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루는 물의 증가나 감소에 따라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주는 첨단 물시계로, 조선 시대의 국가 표준시계였다. 1434년(세종 16년) 세종의 명에 따라 장영실이 만들었지만 당시 만들었던 자격루는 지금 전하지 않고, 1536년(종종 31년)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인 파수호(播水壺 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 3점, 수수호(受水壺 물을 받는 청동 원통형 항아리) 2점만 창경궁 보루각에 남아 있었다.
자격루는 일제강점기에 덕수궁 광명문 안으로 옮겨 전시되면서 흙먼지 제거와 기름 도포 등 경미한 보존처리를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청동재질로 된 자격루의 부식과 손상을 더 이상 막기 어려워졌다. 이에 2018년 6월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져 보존처리를 받게 됐다.
보존처리를 마치자 정확한 관찰이 어려웠던 수수호(왼쪽) 상단의 명문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조 당시 주조 돋을새김(양각)한 명문에는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의 직책과 이름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명문의 몇몇 글자가 마모돼 12명 중 4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새롭게 확인된 인물은 이공장(李公檣, ?~?), 안현(安玹, 1501~1560), 김수성(金遂性, ?~1546), 채무적(蔡無敵, 1500~1554)이다.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문과방목’에는 자격루 제작 시기에 이들이 명문의 직책을 맡았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들 사료에는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 자격루 제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