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폐쇄적인 북한 체제에서도 최고급 비밀 정보에 속한다. 따라서 북한 관영 매체가 신변이상 사실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 정보가 새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세계 각국 정보당국은 북한 공식 발표를 보고서야 사실을 확인했다. 김정일은 그를 치료했던 외국 의료진 등을 통해 건강 정보가 유출되기는 했지만 사망 사실까지는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자세히 알 만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는다. 이중 외부에 알려진 인물은 부인 리설주 여사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여성 3인방에 더해 김씨 일가의 ‘집사’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 위원장의 ‘비선실세’로 통하는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까지 다섯 사람 정도를 들 수 있다. 아울러 김 위원장 전속 의료진과 ‘방탄 경호단’으로 알려진 근접 경호원 중 극히 일부가 알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수술을 받았다는 정보가 수일 내에 알려졌다면 이들 핵심 인사 사이에 유출자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에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들이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외부에 발설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관측이 많다. 의료진이나 경호원 중 누군가가 말실수를 했다면 즉각 유출자로 지목돼 가혹한 처벌을 면하기 힘들다. 정부 당국자와 북한 전문가들이 김 위원장 위중설의 진위를 의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2일 “김 위원장의 신변은 김여정, 조용원, 김창선 정도만 알 수 있는 정보”라며 “국내 매체가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북한 주민에게서 듣고 보도했다면 북한은 지금 대혼란 상태라는 얘기가 된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선대인 김일성·김정일의 사망 사실도 북한 매체 보도가 나온 뒤에야 알려졌는데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외부로 유출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에 따르면 김일성이 1994년 7월 사망했을 때 북한 내에서조차 이 사실을 안 사람은 극소수였다. 당시 외무상이었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사망 당일 오전 외무성 내 중·러 담당 부상을 불러 마오쩌둥과 스탈린 사망 당시 두 나라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급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김영남에게 거의 30분 간격으로 보고를 재촉했다고 한다. 자료를 찾느라 수십 명이 동원됐지만 이들 중 누구도 김일성 사망 사실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김정일은 2008년 9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일주일 동안 외무성 내 외교문서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역시 최고지도자의 신변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외무성 내에서 김정일이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을지 모른다는 추측만 나왔을 뿐 뇌졸중이 왔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3년 뒤 북한 매체가 김정일 사망 이틀 만에 부고 보도를 내놨을 때도 당시 박의춘 외무상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등 간부들은 정상 근무 중이었다. 당일 정오 TV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리춘희 아나운서를 보고서야 김정일 사망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김정일은 뇌졸중 수술을 위해 평양에 들어갔던 프랑스 의사들의 움직임이 한·미 정보당국에 포착되면서 건강 정보가 비교적 상세히 알려졌다. 한·미 당국은 김정일의 뇌 CT(컴퓨터단층촬영) 자료를 입수해 그의 여생이 3~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정일이 2011년 12월 사망하면서 예측이 적중했다. 이런 한·미 양국조차 김정일 사망 사실만큼은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역시 선대와 동일한 수준의 극비 정보로 다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김 위원장은 2018~19년 사이 다양한 외교 일정을 수행하면서 건강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증거물을 적잖게 남겼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현재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을 경우 앞으로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