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필 현판은 철거되고 오랏줄에 묶여 무릎 꿇린 동상은 세워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권력을 거머쥐었다가 사형수로 전락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구한 운명에 눈길이 다시 쏠리고 있다. 1931년생으로 만 88세 미수(米壽)를 지나 90세 졸수(卒壽)를 코앞에 둔 그가 인생 황혼기에도 굴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총칼과 탱크로 진압하고 신군부의 호위 속에 제11대·제12대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온몸으로 누렸던 전씨.
그는 1995년 12월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이듬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았다가 수감된 지 2년여 만인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하지만 아직도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는 처지다. 오는 27일 광주지법에서 1년여 만에 다시 법정 출석을 앞두고 있다.
광주지역 5월 단체들은 전씨의 이달 말 재판 출석을 그날 이후 40년이 흘렀는데도 규명되지 않은 5·18책임자 처벌의 계기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오랏줄에 목이 감기고 죄수복을 입은 채 무릎을 꿇은 전씨의 동상을 광주 법정 앞에 세우고 구속 수감을 촉구하기로 했다.
전씨 동상은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5·18시국회의, 5·18구속부상자회 서울지회 등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운 것이다.
유족회와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등 5월 3개 단체들은 “쇠창살 안에 갇혀 있는 전씨의 동상을 보는 것만으로 속이 후련하다”며 전씨가 재판을 받는 법정 앞에 이를 옮겨 설치해 전씨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전씨가 권력의 정점에 머무를 당시 직접 써서 내건 국립대전현충원 친필 현판과 현충탑 헌시비(獻詩碑)는 이와 반대로 35년여 만에 철거된다.
보훈처는 1985년 문을 연 국립대전현충원의 현충문에 걸린 전씨의 친필 현판과 헌시비를 교체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삼득 보훈처장은 22일 광주를 방문해 5월 단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5·18 40주년 기념일 이전에 현판과 헌시비를 바꿀 것”이라는 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1985년 11월 13일 전체 면적 322만㎡ 규모로 문을 연 대전현충원은 2006년 1월 관련법 시행에 따라 관리주체가 국방부에서 보훈처로 변경됐다.
대전현충원의 현충문에는 전씨가 써서 내려보낸 글씨가 한글 현판이 걸려 있으며 헌시비에는 전씨가 순국 영령을 모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통령 전두환은 온 겨레의 정성을 모아 순국 영령을 이 언덕에 모시나니 하늘과 땅이 함께 길이길이 보호할 것입니다. 1985년 11월6일’이라는 문구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20일 “일제침략과 6·25전쟁, 월남전 등에서 활약한 애국지사와 순국영령,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대전현충원 현충문 중앙에 걸린 전씨의 현판과 헌시비를 철거해달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4년 경찰청 로비 벽에 새겨 있던 전두환 글씨 ‘호국경찰’을 경찰청이 자발적으로 철거한 전례가 있다”며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훈과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전씨 친필 현판 등은 마땅히 철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