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발로 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21일 하루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극도로 폐쇄적인 체제의 최고존엄의 신변은 극비사항이다. 따라서 때로는 하나의 단서만으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질 수가 있고, 때로는 기정사실화된다.
우리 정부는 파문이 커지자 “북한 내부의 특이동향은 파악되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도 측근 인사들과 함께 지방에서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과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때는 상황이 어땠을까.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냈던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이와 관련한 일단의 자료를 내놨다.
그는 일단 “북한 최고 존엄인 김씨 일가의 동선과 신변은 국가적 극비 사안이라 최고위 간부들도 거의 알 수 없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북·중 국경에 전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8일 오전 2시에 사망했을 당시 북한에서 이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고 태 당선인은 전했다. 태 당선인에 따르면 김 주석이 사망한 당일 오전 김영남 외교부장이 중국·러시아 담당 부상들을 조용히 불러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중국과 러시아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빨리 보고하라’는 지시했다.
당시 김정일은 김영남에게 거의 30분 간격으로 ‘왜 중국과 러시아 관련 자료가 올라오지 않느냐’고 채근했다고 한다. 자료를 찾는 데 동원된 수십명의 사람들은 김 주석이 사망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북한은 김 주석이 숨진 지 34시간 만인 7월 9일 정오에 관련 소식을 발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숨졌을 때도 이틀이 지나서야 사망 사실이 발표됐다. 12월 19일 발표 직전까지도 외무성에선 평온하게 일상 업무가 진행됐다고 한다. 태 당선인은 “2008년 9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도 일주일 동안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며 “김정일이 직접 결재하는 외교문서가 일주일간 결재가 밀릴 때도 외무성에서는 김정일이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것이라고만 추측했다”고 전했다.
다만 태 당선인은 이번 ‘김정은 신변이상설’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평소와 다르다고 했다. 신변이상설이 보도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북한 당국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북한은 김정은 신변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수일 안에 김 위원장의 건재한 모습을 보여왔다. 태 당선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 이상에 대해서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며 “북한 이상 징후 파악과 급변 사태에 대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