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범행 장면 CCTV 영상을 고의로 삭제했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피해자 측의 진정이 제기됐다.
피해 중학생의 오빠인 A씨는 21일 인천지방경찰청에 제출한 A4용지 7장 분량의 진정서를 통해 “가해자 측이 담당 수사관과 내통해 유일한 사건 현장 영상 자료인 CCTV 영상 일부를 삭제했다고 의심된다”며 “수사관이 CCTV 영상을 확보할 당시 촬영한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라진 CCTV 영상에는 피의자인 B군(15) 등 중학생 2명이 지난해 12월 23일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범행 장소인 아파트에서 끌고 가는 장면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범행 시점으로부터 3일 뒤 아파트 관리사무실을 찾아 해당 CCTV 영상을 열람하고 촬영했으나 해당 장면이 누락됐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검찰에서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피의자들의 특수강간(집단성폭행) 범행 시점 직전부터 직후까지의 영상자료만 사라진 것이 이상하다”며 “수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해당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촬영하려고 했다는 경찰 측 해명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A씨는 또 “담당 수사관이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올해 1월 5일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연락했다고 주장했으나 관리사무실은 해당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담당 수사팀장은 CCTV 영상이 사라진 문제와 관련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가해자 측이 모두 영상을 확인하고 내용을 인정했다”며 해당 영상이 없어도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으나 이마저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A씨는 보고 있다.
그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상황실장, 열람 기록지를 확인한 결과 가해자 중 1명 측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CCTV 영상을 확인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알리기 위해 해당 수사팀이 속한 경찰서 서장에게 이달 8일부터 이틀 연속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도 했다.
B군 등 중학생 2명은 지난해 12월 23일 새벽 시간대 인천시 한 아파트 헬스장에서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C양에게 술을 먹인 뒤 옥상 인근 계단으로 끌고 가 잇따라 성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해당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그제야 경찰은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가해자들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늑장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부실 수사 의혹이 일자 경찰은 자체 감찰 조사와 인천 지역 10개 경찰서의 성폭력 사건 등에 대한 전수 점검에 착수한 상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