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피해 여성, 한국 정부 상대로 첫 소송

입력 2020-04-21 17:05
민변베트남TF 관계자들이 21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베트남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국가배상청구 소장 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학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소송에서 꼭 이기고 싶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는 60대 베트남 여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첫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민변베트남TF)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소송 원고인 응우옌 티탄(60)을 대신해 국가배상청구 소장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원고인 응우옌티탄 할머니는 베트남에서 화상으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연합뉴스

민변베트남TF 소속 변호사들에게 소송 대리를 위임한 티탄은 이날 화상통화를 통해 “이번 소송은 왜 한국군이 비무장상태의 민간인을 살해했는지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배경과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이번 소송을 통해서 나를 포함한 베트남인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희망한다”며 “이번 소송이 나 개인뿐 아니라 많은 베트남인 피해자를 위한 소송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TF 팀장인 김남주 변호사는 “베트남 전쟁 당시 피해를 입은 유족과 생존자들은 수십년 동안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대한민국의 책임을 물어왔다”며 “1년 전에 응우예 티 탄씨를 비롯한 104명의 유족과 생존자들은 청와대에 이같은 질문을 청원 현식으로 전달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국방부가 자신들의 기록에는 민간인 학살 내용이 기록돼있지 않다는 변명만을 보내 왔다"며 "이번 소송을 통해 다시 대한민국에 왜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들을 죽였는지, 그리고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없는지를 묻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민변베트남TF’ 측에 따르면 티탄은 8살이던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시 디엔반현 탄퐁사 퐁니마을에서 파월 한국군에 의해 복부에 총상을 입고 1년간 병원에 입원했으며 함께 총격을 당한 티탄의 가족들도 죽거나 다쳤다.

티탄은 2015년부터 한국을 찾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해결을 촉구해왔다. 2018년 4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민간법정의 원고로 참여하기도 했고, 지난해 4월 청와대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민변베트남TF’ 측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년 이상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의 용기 있는 소송에 국민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유승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