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23·여)씨는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서 알림 문자를 받았다.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이씨를 태그했던 것이다. 이씨는 해당 사진과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사진과 함께 “퍼뜩 DM(다이렉트 메시지) 안보내주고 모하노”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해당 계정의 아이디는 ‘nbunbang3 (n번방3)’이었다.
이씨는 “처음에 너무 놀라서 바로 차단했다”고 말했다. 아이디 밑에는 “최후통첩. 8시까지 쌩이면 동네방네 XX+XX+면상배포”라고 적혀있었다. 이날 오후 8시까지 DM을 보내지 않으면 이씨의 신상을 모두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왜 협박 메시지를 보냈나
이씨는 n번방 공범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어떤 종류의 피해를 받은 적도 없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특정해 이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궁금했다. 해당 글을 다시 살펴보던 중 이씨 외에도 10명의 여성이 해당 게시글에 함께 태그된 것을 발견했다. 이씨는 태그된 여성 중 한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두사람 모두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관련한 SNS 계정을 팔로우했다는 공통 분모를 찾아냈다.
현재 SNS 상에는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계정이 있다. 이씨는 n번방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석할 때 해당 계정을 팔로우했다. nbunbang3 (n번방3) 계정자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계정을 팔로우한 여성들을 노렸다. 그리고는 오후 8시까지 팔로우를 취소하고 DM으로 증거 자료를 보내라고 협박했다.
이씨는 “이들은 ‘성범죄자 신상공개’ SNS 계정을 폭파시키려 한 것 같다. 본인들의 신상이 노출되는게 두려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420여명의 여성들이 ‘성범죄자 신상공개’ 계정을 팔로우했다. 이중 70~80명의 여성들이 협박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예인이면 본분에 충실해라”
피해는 유명 여성 연예인들에게도 이어졌다. 지난달 국민 청와대 게시판에는 ‘n번방 공범자의 신상공개를 요구합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당시 여성 연예인들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청원 동의 의사를 밝혔다. nbunbang3 (n번방3) 계정자는 이 여성 연예인들을 노렸다.
그는 다시 한번 형태를 알 수 없는 사진을 올린 뒤 여성 연예인들을 태그했다. 그리고는 “연예인이면 본분에 충실하고 털기 전에 반성해라”고 협박했다. 인스타그램에 태그를 당하면 해당 연예인의 게시물에도 그 사진이 그대로 공개된다. 여성 연예인의 경우 팔로어가 수백만이 넘기 때문에 다수에게 자신의 협박 메시지가 노출될 수 있다.
이런 소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졌다. 누리꾼들은 해당 계정을 신고하는 법을 공유했다. 각자의 피해 사실을 공유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이들이 공유한 정보에 따르면 nbunbang3 (n번방3) 계정 외에도 nbunbang2 (n번방2), nbunbang5 (n번방5) 등이 있다. 현재 해당 계정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혹시 진짜인가…” 여성들이 두려워한 이유
이씨를 비롯해 협박 태그를 받은 여성들은 n번방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계정으로 설정해 친구가 아니면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씨는 처음에 글을 보고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슨 이유일까.
그는 당시 SNS상에 ‘지인능욕방을 조심하라’는 글이 많았다고 했다. 지인능욕방은 지인의 사진을 올리면 다른 사람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이나 영상에 지인의 얼굴을 합성해 유포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주변 사람이 n번방 관련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런데 모르는 계정이 그 계정에 있던 지인의 얼굴에 속옷을 합성해 프로필 사진으로 해놨다”며 “2차 피해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게시물이나 스토리를 올릴 때 조심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씨는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가해자들이 어느 정도 반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엄청난 착각이었다”면서 “n번방 사건에 대해서 관심도가 높았다가 요즘에는 잠잠해진 것 같다. 이러한 2차, 3차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