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네타냐후, 코로나 덕에 5선…중동 강경책 전망

입력 2020-04-21 15:46 수정 2020-04-21 16:05
지난 3일 선거를 앞두고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서 유세 중인 베니 간츠(왼쪽) 청백당 대표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부정부패 혐의로 비난을 받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코로나19 혼란 속에서 5선에 성공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요르단강 서안 합병안을 거론해 온 만큼 향후 중동 정책은 강경 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은 집권 보수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총리와 중도 정당 청백당의 베니 간츠 대표가 새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고 코로나19 ‘비상 내각’을 꾸리기로 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비상 내각이 이스라엘 국민의 생명과 삶을 구하기 위해 일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했다”면서 “이스라엘 국민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간츠 대표는 “우리는 네 번째 선거가 치러지는 것을 막았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코로나19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18개월 동안 먼저 총리직을 수행하고 간츠 대표가 총리직을 이어받게 된다. 네타냐후가 총리직을 수행할 때 간츠 대표는 국방부 장관직을 맡을 예정이다.

네타냐후의 총리 재임기간은 14년 가량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길다. 네타냐후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지냈으며 2009년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 뒤 계속 집권해왔다. 네타냐후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간츠 대표는 2011∼2015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지낸 직업군인 출신으로 2018년 이스라엘 회복당을 창당한 뒤 지지층을 넓혀왔다.

이스라엘에선 2018년 12월 연정 붕괴로 의회가 해산한 뒤 1년 4개월 동안 정국 혼란이 이어져 왔다. 지난해 4월과 9월에 총선이 치러졌으나 네타냐후 총리와 간츠 대표 모두 연정을 꾸리지 못했다. 지난 3월 총선에서도 네타냐후 총리와 간츠 대표가 접전을 벌인 뒤 간츠 대표가 라우벤 리블린 대통령으로부터 연정 구성권을 받았지만 연정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안보 문제에 관해 보수 성향이 일치하는 새 연정은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정책에서 강경책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와 간츠 대표가 합의한 내용에 이스라엘이 유대인 정착촌이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를 합병하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이스라엘에 합병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요르단강 서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핵심으로 이스라엘이 합병에 나설 경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정세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에는 290만명의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다. 이 곳의 유대인 정착촌에는 이스라엘인약 6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국제사회는 대부분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무함마드 쉬타예흐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 새 연정의 요르단강 서안 합병안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깨뜨리고 이른바 ‘2국가 해법’을 끝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2국가 해법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NYT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연정은 두 개의 골치아픈 일을 해결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면서 “하나는 부패 혐의로 권력을 위협받는 것,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까지 넓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1월 뇌물수수와 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다음달 말 이후로 재판이 연기된 상태다.

네타냐후 총리의 전기를 쓰기도 한 칼럼니스트 안셸 페퍼는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기회에 간츠 대표의 ‘보디가드’ 서비스도 얻게 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간츠 대표가 총리직을 맡을 때도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주요 권력으로서 자리를 보장받게 된다. 네타냐후를 지켜야 간츠 대표 자신도 총리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