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본에서도 재택근무가 도입됐으나, 서류 결재시 상사의 도장을 받아야만 하는 ‘도장 문화’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일본 도쿄 지하철 주요 16개 역에는 도장 문화를 꼬집는 옥외광고가 게재돼 화제를 모았다.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도장을 찍으러 출근했다.” 간결한 두 문장으로 구성된 해당 광고는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도 출근할 수밖에 없는 일본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해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도쿄 등 7개 광역지역에 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사람 간 접촉을 평소보다 70~80% 줄여야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며 대외활동 자제를 요청했다. 사무실 출근이 부득이할 경우 인력은 최소 70% 감소시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 특유의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아날로그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일본의 경우 서류 작성은 개인 컴퓨터로 가능하지만 결재 및 계약 서류는 대부분 상사나 임원의 날인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부하직원뿐 아니라 상사들도 주당 서너 번은 도장을 찍으러 회사에 나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정보경제사회추진협회에 따르면 인감이나 자필서명 대신 온라인 전자계약을 일부라도 도입한 기업은 1월 기준 43.3%에 불과하다. 중소·영세 기업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더욱이 과학기술 IT 담당인 타케모토 나오카즈 장관이 ‘일본의 인장 제도·문화 수호 의원 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도장 문화 때문에 재택근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질문에 “민간 영역의 문제이므로 정부는 개입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