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탈취하는 세상, 코로나는 강한 국가를 불렀다”

입력 2020-04-21 08:20 수정 2020-04-21 11:18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넥스트노멀’ ‘세미노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설명하려는 용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의학적 사건’으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의료문제를 넘어 경제문제, 정치문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총선을 끝낸 우리 사회 역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삶과 사회의 변화, 국가의 역할, 재편될 국제질서를 고민해야 한다.

김호기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위험판단능력인 ‘리스크 리터러시(Risk Literacy)’를 갖출 것을 권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각종 미디어의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처럼, 위험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위험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침착성을 유지하며, 방역당국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최현규 기자

김호기(60)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사회 연구자로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일은 사회 변동의 방향과 내용을 읽어내는 것”이라는 김 교수는 정치·사회·경제를 포괄하는 폭넓은 식견으로 미래의제를 다뤄왔다.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비롯해 문재인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주도적으로 만든 참여형 지식인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미래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 당겨왔다”며 거대한 시대적 흐름으로서의 ‘코로나 모멘텀’에 대해 말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이중적 뉴노멀 시대’ 또는 ‘제2의 뉴노멀 사회’라고 이름 붙이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적 불확실성이 뉴노멀이었다면 전염병의 세계화가 낳은 위험의 불확실성이 또 다른 뉴노멀이 됐다. 지구화된 전염병이 비정상이 아니라 마치 정상인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거라는 의미다. 이 두 개의 뉴노멀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경제위기는 보통 금융에서 먼저 발생했지만 이번엔 전염병이라는 뉴노멀이 실물 위기를 먼저 발생시켰다. 실물에서 금융으로, 다시 실물로 위기가 전이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 뉴노멀’로 정의할 수 있겠다.”

-위험사회가 정보사회의 진전과 결합해 ‘공포사회’로 진화하고 있다는 글을 쓰셨다.

“‘위험사회’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현재 인류가 마주한 위험은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이 낳은 것으로,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를 위험사회라 한다). ‘공포사회’란 실제의 공포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강화로 모든 뉴스가 즉시성을 가지고 지구화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어느 나라에서 몇천명이 사망했다더라, 그러면 공포스럽다. 가짜뉴스까지 범람하면서 전염병에 대한 불안이 단숨에 과도한 공포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불편한 손님’ 바이러스,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

-인포데믹과 연결되는 주장이다.

“전염병의 세계화에서 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도는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문제는 미래다. 뛰어난 바이러스 연구자인 네이선 울프에 따르면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비규칙적으로 폭풍처럼 계속 다가올 거라고 한다. 내년이 될 수도 있고 5년 후, 1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열대우림의 파괴나 기후변화, 아니면 빠른 산업화의 그늘인 비위생 등으로 인해 ‘불편한 손님’인 바이러스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불안이 공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초대하지 않은 불편한 손님이 언제 우리를 기습 방문할지 모르니 우려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정신이자 차기 대선의 키워드로 일자리와 안전, 공정을 꼽았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이었던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관계자가 어르신에게 비닐장갑을 씌워주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뷰 요청에 4·15 총선의 결과가 나온 후 하자고 하셨다. 이번 총선의 결과를 어떻게 분석하나.

“이번 총선은 ‘코로나 선거’ ‘마스크 선거’였다. 지금 정부를 진보 정부라고 하는데, 원래 진보의 가치는 안정보다 변화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투표장에 선 순간 자유냐 평등이냐, 성장이냐 복지냐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국정 운영의 안정을 원하게 된 거다. 안전이라는 시대정신이 작동한 것이다. 정부가 방역정책을 제대로 추진해왔기 때문에 많은 중도층이 국정운영의 안정을 바란 것이다.”

-‘안전’이 시대정신이라면, 의료적 차원뿐 아니라 경제적 안전까지 포괄하는 의미인가.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정신은 이중적 뉴노멀에 대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첫째,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최고의 시대정신은 일자리 창출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곧 복지다. 두 번째는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이라고 본다. 일자리와 안전이 보수든 진보든 지구적 차원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정신이 될 것 같다. 한국사회의 경우는 여기에 공정이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특권과 차별을 해소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젊은 세대의 강력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키워드는 일자리·안전·공정

-다음 대선까지 만 2년이 남지 않았다. 차기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이런 시대정신인가.

“앞질러 말씀드리자면 2022년 대선도 이 세 가지 새로운 시대정신에 어떤 해법을 내세울 것인가를 놓고 치러지지 않을까 싶다. 차기 대선이 2022년 3월 초에 있을 테니 올겨울부터 곧바로 대선 국면이 열린다고 본다. 내년은 현재 권력과 미래권력이 공존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스웨덴이 추진했던 집단면역 전략, 중국의 봉쇄 전략, 한국식 확진자 동선공개와 사회적 거리두기다. 이 전략을 결정한 건 국가다. 이름을 붙여보자면 ‘국가의 귀환’이 이뤄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게 드러난 후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적절하게 개입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국가의 복권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예기찮게 코로나19가 국가를 귀환시켰다.”

-더 큰 정부에 대한 요구인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문제보다 강한 정부냐 약한 정부냐의 문제다. 지금은 강한 정부가 요구되고 있고, 강한 정부 패러다임이 국가의 귀환을 낳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미래의 역사’

-기본소득 논쟁도 뜨거웠다.

“지금 얘기되는 것은 기본소득이라기보다 코로나19가 낳은 일종의 재난수당이다. 그런데 프랑스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는 이미 1980년대에 세계 노동시장의 3분의 1은 과잉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제4차 산업혁명의 진행과정을 보면 중장기적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해갈 것인가. 기본소득이 유력한 대안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결국 기본소득은 언젠간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미래의 역사’라고 본다. 핀란드 등 일부 나라들이 기본소득을 실험해 왔다. 코로나19가 미래의 역사인 기본소득을 현재의 역사로 당겨왔다.”

-바이러스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코로나19가 새로운 계급 불평등 ‘코로나 디바이드(격차)’와 ‘코로나 카스트’를 낳았다.

“‘위험사회’의 울리히 벡이 ‘안전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몰아낸다’고 말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평등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오래전에 제가 ‘더위는 평등하지 않다’는 칼럼을 썼다. 에어컨이 있는 사람과 선풍기도 없는 사람이 있지 않나. 마찬가지다. 코로나19도 당장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하는 사람과 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위험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생태학자들도 환경파괴의 피해가 모든 계급이나 세대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 않는다. 환경위기가 고령세대,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거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했다. 반(反)세계화의 시대, 각자도생의 국수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많은 사회학자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가 약화됐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화의 약화를 보여주는 것이 포퓰리즘의 득세다. 보수적 포퓰리즘의 특징 중 하나가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차별이다. 세계화는 경제·문화뿐 아니라 인구이동의 세계화이기도 했는데, 포퓰리즘이 이것을 막아 세계화가 약화됐다. 여기에 더해 전염병의 세계화가 경제의 세계화를 약화시키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세계화가 세계화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포퓰리즘적 경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훨씬 더 강화될 거라고 본다. 앞으로 자원 확보를 위한 민족주의가 강하게 발휘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식량주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국제 분업체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우리는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자원의 민족주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대책을 만들어 놔야 한다.”

-WHO나 유엔이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무력함을 드러냈다.

“나라들끼리 마스크를 탈취하는 걸 보니 세계질서가 국제연맹 이전의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글로벌 거버넌스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유엔, WHO, G7, G20을 과대평가해 왔다는 것을 전염병의 세계화가 깨닫게 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려면 글로벌 연대가 필수이지만 당분간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지 않을까.

“지금은 각자 급박하게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파고가 지나간 다음에 국가들 간에 위험의 세계화에 체계적으로 맞설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가 모색돼야 한다고 본다. 앞에 말했던 네이선 울프는 ‘글로벌 바이러스 예보’라는 연구소를 세웠다. 바이러스가 발생할 수 있는 열대우림이나 동남아시아 야생동물 시장에 인력을 파견해 전염병을 조기 발견하고, 발생하자마자 곧바로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이렇게 전염병의 세계화에 대한 국제적 거버넌스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감염병 대책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의학과 생물학을 위시한 과학에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대다수 선진국은 전염병 대처보다 테러 방지에 더 많은 투자를 해왔다. 통계에 따르면 9·11테러를 포함해 2001년 4월에서 2002년 8월까지 테러로 인한 사망자보다 2009년 4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신종플루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배 이상 많았는데 말이다.”

김호기 교수가 지난 17일 코로나19로 텅 빈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 앞에 섰다. 최현규 기자

-프랑스 언론에서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에 대해 사생활 침해, 감시와 밀고의 나라라고 평하는 글을 실어 시끄러웠다.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우리가 국가의 통제에 더 순응하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 앞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자유를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과 공동체 보호를 택할 것인가. 개인주의의 발전 정도에 따라 나라들을 배열하면 맨 한쪽 끝에 사생활을 중시하는 스웨덴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 중국이 있다. 그 가운데쯤 기독교의 영향으로 유럽에 비해 공동체주의가 강한 미국이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한국이 있다.

프랑스가 우리를 감시와 밀고의 나라라고 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자면, 감시와 협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감시의 나라인 동시에 협력의 나라인 것이고, 프랑스가 말하는 개인주의의 또 다른 측면이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나라 국민의 공동 결정이지, 어떤 것이 낫다는 우위의 판단은 내리기 어렵다.”

-프랑스의 비난은 서구 중심주의와 닿아있어 보인다.

“그렇다. 동아시아적 공동체주의나 집단주의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염병은 개인적 대처 못지않게 협력적 대처가 중요하다. 예전에 제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봤는데 ‘연대적 개인주의’라고,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협력이 공존하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닌가.”

-코로나19 앞에 무너진 서구 선진국을 언급하면서 동양의 약진은 물론 한국이 리딩 선진국이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저는 약간 유보적이다. 사회운영체제로 정상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비상시국에서는 국가주의가 더 효율적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비상시국에서 국가주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이번에 입증해 보였지만 정상시국에서도 이게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상시국으로 되돌아갔을 때 동아시아 모델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거라고 본다.”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그건 맞다. 이미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의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에 들어갔다. 사실상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고 본다. 적어도 코로나19에 우리 사회 전체가 대처한 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고 본다. 서구적 개인주의의 그늘을 이번에 보게 됐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서구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를 주도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를 앞당기리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군인들이 국기인 오성홍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픽사베이

-‘중국이 미사일 한발 쏘지 않고 제3차 세계대전을 승리했다’는 말도 나왔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를 제패하는 ‘팍스 시니카’가 오게 될까.

“제 딸아이가 1997년생인데, 중국어를 꼭 배우라고 말해주곤 한다. 팍스 시니카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막강한 요인은 역시 인구라는 자원이다. 어마어마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팍스 시니카가 열리려면 몇 가지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은 여전히 존재하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격차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중국의 정치체제 문제다. 국가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라는 연옥’을 통과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할 때 경제활동을 포함해 그 사회의 활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중국이 권위주의 상태에서 선진국이 되는 초유의 길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역사의 교훈은 그렇다. 세 번째는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브리태니카’, 저 멀리 ‘팍스 로마나’까지 핵심적 구성요소는 문화적 헤게모니였다. 과연 중국이 이런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을까.”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런데 여러 흐름을 볼 때 그 시점이 오기는 오지 않을까. 중국도 어떤 형태로든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그 과정이 동시에 문화적 헤게모니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렇게 된다면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던 중국이 300년이 지나면서 복권되는 것이다. 문명의 축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축으로 이동한 것은 이미 분명한 것 같다.”

코로나19, 바람직한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 던져

-14세기의 페스트는 중세를 무너뜨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했다. 전염병이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계기가 된 셈인데, 코로나도 그런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의도하지 않은 세 가지 교훈을 안겨줬다고 본다. 하나는 여전히 믿어야 할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우리가 협력의 문화를 잘 발휘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에 잘 대처하고 있지 않은가. 세 번째로는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가. 자연 파괴, 대량 소비, 기후위기,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빠른 삶, 이제까지 현대문명이라고 칭했던 것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과거와는 달리 느린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결과들일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