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라 쓰고 벌꿀오소리라 읽는다

입력 2020-04-20 22:44 수정 2020-04-20 22:48

플레이오프 1라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구리’ 장하권을 소개하는 포트폴리오였다.

담원 게이밍은 2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에서 DRX에 세트스코어 2대 3으로 졌다. 그러나 경기 승패와별개로 이날 가장 눈부셨던 선수는 패장 장하권이었다.

‘양날의 검’으로 지목되는 장하권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시리즈 내내 잘 두드러졌다. 압권은 3세트에 선보인 세트 플레이였다. ‘표식’ 홍창현(세주아니)에게 연달아 갱킹을 허용하면서도 끊임없이 라인을 밀어 넣었다. 데스수는 전과와 같아서 쌓일 때마다 장하권이 더욱 흉악해졌다.

스플릿 푸시 단계에서도 결코 후진 기어를 넣지 않았다. 아군·적군 정글 몬스터를 가리지 않고 독식해 성장한 그는 ‘데프트’ 김혁규(아펠리오스)와 ‘도란’ 최현준(오른)의 협공에서 역으로 최현준을 잡아내기도 했다.

장하권의 활약은 4세트까지 계속됐다. 제이스를 고른 장하권은 또 최현준(오른)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크립 스코어(CS)를 잔뜩 쌓아 미는 라인을 형성하는 특유의 라인전 스타일을 끝까지 관철했다. 홍창현(세주아니)이 갱킹을 시도했지만 역으로 쫓겨나는 그림도 나왔다.

장하권과 ‘쇼메이커’ 허수, 담원의 원투 펀치는 DRX를 기절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마지막 세트에 나선 장하권은 재차 제이스를 선택했다. 1레벨에 ‘점멸’을 사용하는 등 악조건 속에서 안정적으로 라인전을 펼치며 끝까지 분전했다.

그러나 바텀에 ‘순간이동’을 해 김혁규(아펠리오스)를 잡아내려다가 미끄러졌다. ‘고스트’ 장용준(미스 포츈)이 역으로 김혁규에게 덜미를 잡혔다. 바텀 균형을 무너트리려던 담원의 전략도 수포로 돌아갔다. 담원은 대형 오브젝트를 뺏어가며 시간을 벌었지만 결국 내셔 남작 둥지 앞 전투에서 완패해 세 번째 넥서스를 내줬다.

소환사명은 귀여운 너구리지만, 정작 플레이는 포악하고 겁 모르는 벌꿀오소리를 연상시킨다. 후퇴를 모르고 사냥할 땐 앞뒤를 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공격적 플레이 스타일이 과거 은사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고 지난해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과거에 만난 은사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이 있다. ‘다른 건 바꿔도 공격적인 스타일은 가져가야 살 수 있다’는 거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금까지 해왔다. 공격적인 스타일이 극상으로 가면 가장 완벽한 탑라이너가 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 너구리덕분에 LCK가 훨씬 더 재미있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LCK 팬으로서 이름 모를 그의 은사에게 감사를 표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