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여당 지형①] 거대 파워엘리트 ‘친문’…새 국회서 분화되나

입력 2020-04-20 21:27 수정 2020-04-21 17:29

21대 국회 180석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친문(친문재인계)’가 명실상부한 당내 주류 세력이자, 거대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친문계 의원 숫자만 100여명에 육박해 “더 이상 친문과 비문을 나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멀리서 봤을 때 같은 친문이라도 자세히 보면 그 색깔은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20대 국회에서 당내 선거 등을 거치며 분화해온 기존 친문 세력이 21대 국회에서는 어떻게 재편될지도 관심사다. 이들이 한 당에서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향후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하거나 결정적인 정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오면 분화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단 21대 국회에 새롭게 입성한 친문 그룹에 시선이 쏠린다. 다름 아닌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다. ‘문재인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20일 “윤 전 실장은 정말 문 대통령과 아주 가깝기 때문에 당청 간 가교역할을 하거나 직접 의사를 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 고민정 전 대변인이나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도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중 정 전 수석이나 이 전 수석 등은 비단 청와대 경력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문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전 수석은 2003년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정무기획비서관과 대변인 등을 역임했고 이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도전을 캠프에서 지원했다. 누구보다 문 대통령이나 문재인정부 국정 철학을 잘 아는 이들이 당청 관계에 새로운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1대 국회 생환에 성공한 친문 중진들의 행보도 초미의 관심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전해철 의원은 가장 먼저 원내대표 선거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다. 2012년 대선 캠프에서 인연을 맺은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패배한 선거를 함께 했기 때문에 결속력이 높은 편이다. 당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홍영표 의원과 2012년, 2017년 대선 캠프에서 모두 대변인을 맡았던 박광온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윤호중 의원도 2012년 대선 캠프에서 안철수 캠프를 상대로 후보단일화 협상에 참여했고, 대선 패배 뒤에는 ‘대변인격’으로 활동했다. 홍 의원은 당권 도전 가능성이, 윤 총장은 원내대표 도전 가능성이 각각 거론된다.

오랜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친문 세력은 20대 국회를 지나오면서 분화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2018년 전당대회나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 등 당내 선거를 거치면서 이 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2년 전 전당대회 당시 이해찬 대표를 지지한 친문 그룹과 김진표 의원을 지지한 친문 그룹이 명확히 나뉘게 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위 ‘부엉이 모임’에서 ‘친문 대표주자’를 정리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목이 집중됐고, 결국 당시 계파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부엉이 모임은 해산했다. 부엉이 모임은 2012년 대선 이후 첫 결성돼 조금씩 확대·조정을 거친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해산될 때는 초·재선 30여명이 중심이었고, 이 중 다수가 김진표 의원에 표를 던졌다.

반면 당시 이해찬 대표를 지지했던 김태년 의원(정책위의장), 윤호중 의원(사무총장), 김경협 의원(수석 사무부총장) ,홍익표 의원(수석대변인)은 주요 당직을 맡았다. 친문 중에서도 이 대표와 가까운 이들로 분화한 셈이다.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태년 의원이 맞붙자 이 구도는 확연히 드러난다. 과거 부엉이 모임이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김태년 의원을 필두로 한 ‘이해찬 체제’를 견제하는 의미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당내에서는 ‘계파 갈등’이 수면으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한다. 한 의원은 “친문 대 비문 구도는 이미 2016년 국민의당 분당 사태로 끝났다”며 “친문과 비문을 구별하는 과정이 얼마나 당의 경쟁력을 소진시켰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굳이 민주당에 ‘계파 정치’를 부활시킴으로써 불가피한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 대승 이후 전보다 더 친문·비문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미 ‘친문’이 기존의 계파 정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결국 다 대통령 덕분에 선거에서 이긴 것 아니냐”고 말했고, 다른 재선 의원도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높은데 여기서 사분오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당장 눈앞에 닥친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대표 주자’ ‘민평련 대표 주자’ 등 주요 세력 내에서 후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내 선거를 거치며 일시적으로 지지그룹이 형성되는 것일 뿐”이라며 “특정 조직이 세력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