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각국의 봉쇄 조치는 특히 빈곤국 국민들에게 위협적이다. 이들에게 경제활동 중단 조치는 굶주림으로 직결된다. 봉쇄 조치가 장기화되면서 빈곤국에서는 “이대로 가만히 굶어죽을 수 없다”는 민중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이동제한 조치로 실물 경제가 마비되면서 세계 각지에서 빈곤층을 중심으로 시위, 분신 등 격렬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시장에서 ‘툭툭(동력 설비를 갖춘 인력거)’을 끌며 하루 20달러 남짓을 벌던 후세인 파케르(20)는 정부의 통행금지령이 본격화 된 후 일을 구하러 나갔다가 벌금을 물리려는 경찰과 다툼을 벌였다. 그는 “내 아내와 아들이 굶주리는 걸 보거나 굶주려 죽느니 차라리 감염돼 죽는 게 낫다”고 WP에 토로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이라크 전체 인구의 22.5%는 하루 1.9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극빈곤층이다. 빈곤층 비중이 높은 사회구조상 경제 붕괴는 대규모 소요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창궐 전부터 재정파탄 상태였던 레바논에서는 지난주 수도 베이루트 등을 중심으로 민생고에 분노한 주민 시위가 3건 이상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택시기사는 지난달 24일 당국의 영업제한 조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게 되자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택시에 불을 질렀고,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시리아 난민 출신 가장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데 절망해 분신한 채 내달리는 모습도 소셜미디어에 퍼져나갔다.
전문가들은 오랜 전쟁으로 이미 황폐화된 중동 지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민중봉기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10년 전 중동 지역을 뒤흔들었던 ‘아랍의 봄’ 반정부시위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랍의 봄 시위가 집권층 부패에 대한 분노,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과 달리 새로운 시위는 절망에서 촉발돼 보다 폭력적인 형태를 띨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런던정경대(LSE)의 파와즈 게스게스 교수(국제관계학)는 “아랍세계에서 벌어질 다음 번 소요사태는 정치적 개혁을 추구했던 조직적인 시위운동보다 추악하고 폭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민주주의와는 관계없는 극도로 비참한 빈곤, 아사의 공포에서 비롯된 사회적 폭발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빈곤 인구만 3억여명에 달하는 인도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최대 도시 뭄바이에서는 지난 14일 정부의 봉쇄조치가 5월 3일로 연장되자 일자리도 잃고 고향길도 끊긴 일용직 노동자 수만명이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하루벌이로 연명하는 노동자는 세계적으로 20억명이 넘는다. 포르투갈 리스본 노바대학의 카티아 바티스타 교수(경제학)는 “일자리를 잃은 빈곤층에게 보조금도 지급할 수 없는 가난한 국가들이 코로나19가 초래한 불안정에 가장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싱크탱크인 세계개발경제연구소는 “팬데믹에 따른 봉쇄 조치의 결과로 50만명의 인구가 절대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