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집단면역 실험’에 희생된 노인들…정책 실패론 득세

입력 2020-04-20 18:06
19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주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에도 강력한 방역 대신 ‘집단 면역’을 지향점으로 삼아 느슨한 봉쇄 조치를 해온 스웨덴에서 정책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염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의 확진 사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현지시간) 스웨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사망자의 3분의 1은 요양원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수도 스톡홀름에서만 요양원 내 감염 사례가 수백건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웨덴은 집단 면역을 목적으로, 국민의 이동권을 제한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역 정책을 펼쳐왔다. 집단 면역은 감염, 또는 백신을 통해 한 집단에서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 집단 전체가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면역학 용어다. 대규모 폐쇄나 격리 조치보다는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최대한 느리게 퍼지게 해 대다수가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현재까지 학교, 유치원, 식당, 술집 등 공공장소를 폐쇄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더라도 감염 의심자를 돌보지 않는 이상 마스크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에게도 자택 격리만 권고할 뿐, 별다른 방역 지침이 없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런 대응책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국립보건원 소속 감염병 학자인 안데르스 텡넬은 최근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요양원 내 감염 실태와 관련 “심각한 문제”라며 피해가 크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전반적인 전략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영국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는 스톡홀름 주민들이 다음 달 어느 시점에서 집단 면역을 형성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 폭이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면역 전략이 효과를 보더라도 노인들을 제물로 희생시켰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 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레나 에인호른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지금까지 노인 보호가 주목적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에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도 요양원 상황이 심각하다며 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고 보호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요양원 근무자들 사이에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익명의 요양원 직원은 가디언에 “우리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내 근무지에는 마스크가 한 장도 없다”고 호소했다.

한 간호사는 현지 공공방송인 SVT에 출연해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 같은 직원들이 노인들을 감염시킨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더 많은 노인이 감염되지 않은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