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도 감염 주의보… “가짜뉴스로 국가분쟁 우려” [이슈&탐사]

입력 2020-04-20 17:05 수정 2020-04-20 17:18

지난 8일 서울 도곡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회의실에 미래학자와 정치학자, 경제학자 등 30명이 모였다. 연구원이 마련한 ‘코로나19 이후 각 분야별 변화 진단’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비공개로 열린 세미나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예측했다. 이날 행사는 국책연구기관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관련해 개최한 첫 세미나로 파악된다. 국민일보는 발표문을 입수하고 참석자를 전화 인터뷰해 세미나를 재구성했다.

세미나는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짐 데이토 하와이대 명예교수의 원격 특강으로 시작됐다. 데이토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단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서울 강남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지난 8일 열린 ‘코로나19 이후 각 분야별 변화진단’ 신안보포럼에서 짐 데이토 교수(화면)와 포럼 참가자들이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제공

4가지 시나리오는 ①코로나19 극복과 종전 사회체제의 ‘지속’ ② 경제 침체와 기후 변화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붕괴’ ③ 세계 통치기관이 등장하는 ‘억압’ ④ 통신과 기술의 발전이 불러올 ‘대전환’이다. 데이토 교수는 “네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올 가능성이 있는 미래이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건 없다. 어떤 미래가 오든 번영을 계속할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지금처럼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흔치 않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홈페이지

오일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사이버공간 변화’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인포데믹’(infodemic)을 걱정했다.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 잘못된 정보의 급속한 확산을 뜻한다. 그는 “가짜뉴스가 국가안보 강화를 위한 정부 활동을 저지하고 보건정책과 방역 활동을 방해해 정부 기능과 통제력을 상실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발생 때와 달리 SNS에서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
오일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

오 부연구위원은 전화통화에서 “인포데믹이 국가 간 안보 공격에도 악용될 수 있다”며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 공격을 위해 악의적인 정보를 유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가짜뉴스로 국가 간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는 5G 기술 관련한 인포데믹 사례를 들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중국 우한이 5G 기술을 선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5G가 면역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짜뉴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국내외 정치 분야 새로운 리더십’에 관해 발표하고 코로나19 사태 확산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실패 확률이 매우 커졌다”며 “다만 (트럼프가) 좌파의 민생 아이디어를 가로채거나 위기가 다가올수록 중국 때리기 등 분열 전략을 노골적으로 취한다면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감염병의 위협이 일상화되는 ‘뉴노멀’ 시대의 위기에 대해 “단일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성격을 띨 것”이라며 “각 나라가 문을 닫고 식량 등이 무기화된다면 경제위기이자 안보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박성원 김유빈 연구위원은 ‘공공의 안전과 개인 권리 간의 조화’가 앞으로 우리 사회 숙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대면 소통에 대한 본격적인 정책 실험도 과제로 봤다. 두 사람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의 유행 뒤 사회 변화를 여러 문헌과 유튜브의 키워드를 통해 비교, 분석하고 이런 결론을 냈다. 박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공공보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바이오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할지 모른다”면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재택근무 실험은 기업에 해고나 구조조정의 명분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의 충격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미·중간 체제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중국 공급망이 크게 휘청이면서 이에 의존해왔던 서방 국가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며 “미국은 물론 유럽도 제조업이나 인공지능, 5G 같은 주요 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통화에서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의 연결망 속에서 전염병이 확산됐다고 믿는 것 같다”며 “중국 주도의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연대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로 국제적 협력·공조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이상적인 견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백신 개발과 경제 회복을 위해 대대적으로 투자하며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훈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은 발표문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야생동물 서식 가능지역과 인구 밀집 지역이 만남으로써 인수공통감염병(야생동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의 확산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원헬스(One-Health)’ 접근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원헬스란 사람-동물-환경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제하에 모든 관련 분야가 협력해 사람과 동물이 최상의 건강을 얻게 해야 한다는 접근법이다.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