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고3 학평 사실상 취소… ‘깜깜이’ 입시 우려

입력 2020-04-20 16:46

전국 고등학생 102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가 사실상 취소됐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문제지를 받아 집에서 풀고 답을 맞춰보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성적 산출도 하지 않는다. 학평 도입 1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고3 수험생들은 객관적 성적을 파악하는 중요 수단 하나가 사라진 셈이어서 향후 입시 전략 수립에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협의 결과 오는 24일로 예정된 올해 첫 학평을 원격수업 프로그램으로 실시하겠다고 20일 밝혔다. 학교들은 이를 출결 및 수업시수로 인정할 수 있으며, 미참여 시 별도 원격수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문제지는 시험 당일 오전에 드라이브 스루, 워킹 스루 등 대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각 학교가 배부한다. 학생들은 이후 문제지 배부를 고려해 조정되는 시간표에 따라 문제를 풀게 된다. 교시별 문제지는 각 교시 시작 시간에 맞춰 해당 시도교육청과 EBSi 홈페이지에 탑재되며, 정답과 해설은 같은 날 오후 6시 이후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등교 시험과 같은 수준의 공식적 평가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전국 단위의 공동 채점과 성적 처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등교가 어려운 상황에서 학사일정 부담 등의 현실적 이유로 추가 연기도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다. 당초 이번 학력평가는 지난달 12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등교 개학이 늦어지며 모두 네 차례 연기됐다. 전국연합학력평가는 사설 모의고사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고 수험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한다는 취지에서 2002년 시작됐다. 매년 3월과 4월, 7월, 10월에 시행한다.

고3 수험생들은 난감한 처지다. 특히 사교육보다 공교육에 의존해온 학생들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3월 학평은 겨울방학 기간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가늠하는 기회였다.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향후 입시전략을 수립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입시 전문가들에 따르면 3·4월 학평으로 입시 전략의 방향을 세우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6월 모의평가 결과로 확정하는 흐름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내신 성적보다 수능 성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면 정시 준비에 학습 시간을 좀 더 할애하는 방식이다.

경기도교육청 주관 4월 학평 역시 다음 달 12일로 미뤄졌기 때문에 수험생 입장에선 ‘깜깜이’ 입시나 다름없는 상태다. 경북 영주시 영광여고 3학년 장수경양은 “학평이 시험지만 배부하면 기존 기출문제 푸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정·수시 선택을 고민 중인데 방학 때 공부하고 3월 학평으로 판단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고3 수험생들은 등교 개학 이후 1학기 중간·기말고사, 5월 학평, 6월 모의평가 등 빡빡한 시험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처지다.

문제는 학습 격차다. 학생 개인의 사교육 의존도, 지역·학교의 원격 수업의 질, 재수 등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 전망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상위권 학생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위치를 정밀하게 진단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EBS 변형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중위권이라면 등교 개학 전에 수능 진도를 빨리 빼는 방식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송경모 기자 yido@kmib.co.kr